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의 핵무기 능력을 대폭 강화 및 확장하겠다고 밝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견지했던 ‘핵 없는 세상’이란 어젠다를 팽개치고 러시아 등과 냉전시대 같은 핵 군비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22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strengthen)하고 확장(expand)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가진 국방 관련 연설에서 “전략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가 핵전력 강화에 나서면 북한 김정은 정권에 추가 핵실험 및 미사일 개발 명분을 줄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의 핵 공격 등에 맞서기 위한 자위권 차원에서 핵을 개발해왔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로 갈등하는 중국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반발하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측은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고 철저히 폐기하자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제창해 왔다”며 “최대 핵무기를 가진 국가는 핵 감축에 대한 특수하고도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선언은 미-러 양국이 핵무기 수와 크기를 줄이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해온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군비경쟁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 비전을 통해 세계를 핵전쟁의 위협에서 해방하겠다고 선언했다. 2011년 러시아와 새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수를 2018년 5월까지 기존 2200개에서 1550개까지로 줄였다.
현재 미군의 핵무기 수는 러시아보다 적다. 올해 1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총 7000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어 러시아보다 290개 적다. 미 국무부가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특히 핵전력의 3대 축인 ICBM, 전략핵폭격기, SL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는 1367개로 러시아(1796개)보다 적다. 헤리티지재단 미카엘라 도지 선임연구위원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도 핵무기 체계를 강화하고 있는데, 미국만 ‘핵 없는 세상’이란 비현실적 어젠다에 매몰돼 군비 경쟁에서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 주요 언론들이 트럼프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면서 미-러 간 핵 군비 경쟁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제이슨 밀러 인수위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은 핵 확산이 갖는 위협을 언급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핵 군비경쟁의 전 단계로 낙후된 핵시설을 현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미군축협회 대릴 킴벌 소장은 CNN 인터뷰에서 “핵시설 현대화를 위해서는 2021년부터 15년간 매년 180억 달러(약 21조6000억 원)가 들어가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를 실행하는 것 자체가 핵능력 강화의 일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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