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국가정보원 고위직 인사를 할 때 박 대통령이 고른 후보들 중에서 최순실 씨가 낙점한 일이 확인됐다고 24일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박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국정원 2차장(국내 정보총괄)과 기획조정실장 후보들을 전화로 불러주며 최 씨에게 전할 것을 지시하면 정 전 비서관이 후보들의 약력을 덧붙여 최 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2차장에는 11월 검찰 조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5명의 후보 가운데 서천호 전 경찰대학장이 발탁됐다. 기조실장에는 후보 명단에 없던 현 이헌수 기조실장이 임명됐다.
그동안 최 씨가 주로 문화계 쪽 정부 요직 인사를 추천하는 식으로 인사 개입을 했다는 주장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후보를 고른 뒤 최 씨의 의견을 물었다는 얘기는 처음 나온 것이다. 사실이라면 누가 대통령인지 모를 지경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24일 보수단체 탄핵반대 집회에서 “대통령이 1원 한 푼이라도 받았나”라며 박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인(私人)에게 위임하는 이런 식의 국정 농단이야말로 헌법 위반이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법무부는 23일 박 대통령 탄핵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적법 요건을 갖췄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최 씨는 국정원의 추모 국장(국내 정보수집 담당)을 통해 이런저런 보고를 받았고, 추 국장은 정식 계통을 무시하고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최 씨 관련 정보를 보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내부 감찰 결과 근거가 없다고 했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구해우 전 국정원 1차장 산하 북한담당기획관은 본보 인터뷰에서 2014년 5월 남재준 국정원장이 경질된 것은 비선(秘線)과 문고리 권력 조사와 무관치 않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최순실 게이트는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청와대 보안업무를 총괄하면서도 국가 기밀문서들이 마구 최 씨에게 전달되는 것조차 감시하지 못했다. 설사 최 씨 관련 보고가 있었다고 한들 최 씨에게 장악된 국정원 간부들로 인해 상부에 보고되거나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최 씨가 국정원 고위 간부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면 다른 정부 요직 인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 씨는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거의 매일 수석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료를 건네받아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대통령에게 시키는 구조였다”며 “문고리 3인방도 최 씨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특검은 최 씨 일당이 국정원을 비롯해 정부의 인사 농단에 어느 정도로 깊숙이 개입했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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