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23만달러’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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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 빅뱅]‘반기문 23만달러 수수설’ 논란

 《 내년 1월 귀국 예정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외교부 장관 시절과 유엔 사무총장 당선 후 20만 달러가 넘는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발단이 된 시사저널 기사에서 금품 제공자로 적시된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도 잘 알려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반 총장 측과 박 전 회장 측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당장 검찰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완연히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
 

▼ 반기문측 “박연차 돈 받은적 없다”… 민주 “의혹 있으니 수사해야” ▼


 
박연차 전 회장
박연차 전 회장
내년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검증 공세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반 총장은 2004년 1월부터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했지만 인사청문회 대상이 전체 국무위원으로 확대된 2005년 이전이어서 청문회 등을 통한 ‘공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

○ 23만 달러 수수 의혹 보도 파문

 시사저널은 최근호에서 반 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23만 달러(약 2억7000만 원)를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반 총장이 외교부 장관이던 2005년 5월 서울 용산구 공관에서 주최한 베트남 외교장관 일행 환영 만찬에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한 박 전 회장이 1시간쯤 일찍 도착해 20만 달러가 담긴 쇼핑백을 건넨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또 2007년 초 박 전 회장이 ‘유엔 사무총장 취임 축하’ 명목으로 미국 뉴욕의 한 식당을 통해 3만 달러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사실 ‘박연차 의혹’은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 꽤 퍼진 얘기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반 총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박 전 회장의 신문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조재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당시 중수1과 부부장검사)는 시사저널 보도 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 차장검사보다 윗선인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구속 기소) 등은 모두 검찰을 떠난 상황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잘 모르는 이야기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박 회장 측에서 반 총장 관련 내용을 먼저 말했다. 금액은 보도와 달리 수만 달러 규모였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검찰의 수사 의지를 시험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 당시 세계적 인물이었던 반 총장을 거론해 검찰을 역으로 압박하려 했다는 것이다.

○ 반 총장 측 “검증 아닌 음해”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24일 밤(현지 시간) 뉴욕 특파원단에 e메일을 보내 “해당 보도는 완전히 허위이고 근거 없다”며 “(반 총장을 대신해) 해당 언론 편집장에게 사과와 기사 취소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이건 검증이 아니고 음해다”라고 했다.

 반 총장은 의혹 제기에 대비해 측근들에게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공관에 박 전 회장이 참석 대상자 중 유일하게 안 오고 있었는데 더 기다릴 수 없어 참석자들이 만찬장에 들어가려 할 때 박 전 회장이 도착했으며 거기서 박 전 회장을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또 만찬 1시간 전에 공관에 도착하려면 오후 4시 쯤엔 외교부를 떠나야 하는데 바쁜 장관 일정상 그럴 수는 없었다는 것. 반 총장은 “그때 만찬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박 전 회장과의) 만남”이라고 했다고 한다. 반 총장과 박 전 회장이 만찬 전에 별도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반 총장 측은 “20만 달러를 건넸다면 100달러짜리 지폐라 해도 (100장씩) 20뭉치인데 그걸 어떻게 들고 다녔겠느냐”고도 했다. 반 총장 측은 3만 달러 의혹에 대해서도 “뉴욕의 음식점 식당 주인한테 3만 달러를 주라고 하고, 또 그걸 받아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태광실업 관계자도 “해당 언론사에 명예훼손과 민형사상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에선 설사 의혹이 사실이더라도 공소시효는 지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1억 원 이상 뇌물죄 공소시효가 15년으로 개정된 게 2007년 12월이라서, (보도 내용이 사실이어도) 그 이전에 받은 20만 달러는 개정 전 시효(10년)가 적용된다. 또 만약 2007년 3만 달러를 받은 게 사실이어도 정치자금법 위반 시효가 7년이라 처벌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민주당 “수사하라” 공세

 반 총장이 내년 1월 중순 귀국해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면 야당 등에서 본격적인 ‘검증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일부 전·현직 의원은 반 총장이 소유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파트와 서초구 양재동 토지 등 재산과 관련된 검증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등산객 등의 무료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나대지 상태인 양재동 토지는 주변 땅값이 크게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사무총장 연봉은 22만7254달러(약 2억7000만 원)로 10년간 재직하며 현금 재산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반 총장은 2006년 2월 노무현 정부 외교부 장관 시절에는 12억2159만 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23만 달러 수수 의혹에 대해 “반 총장 측은 부인하지만 석연치 않다.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는 해명은 ‘주사는 놨는데 주사를 놓은 사람이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변명과 닮았다”며 “검찰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사무총장 선거운동 자금으로 박 전 회장의 돈이 쓰였을 개연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새누리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특히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미래세대에 위인으로 기억될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무책임한 의혹 공세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추진하는 김성태 의원은 “줬다는 사람도, 받았다는 사람도 없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민주당이 이때다 싶어 부화뇌동하고 있다”며 “검증을 시작하려면 정책과 철학, 역량과 자질에 대한 검증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반박했다.

송찬욱 song@donga.com·신나리 기자 / 뉴욕=부형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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