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떼다.’ 맹탕 청문회를 보며 떠오른 낱말이다. 이는 ‘자기가 하고도 하지 않은 체하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다’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뭉때리다’, ‘새치미를 떼다’가 있다. ‘시치미를 떼다’의 원래 의미에 ‘능청맞다’ ‘쌀쌀하다’는 의미가 더해진 표현들이다.
‘시치미’는 사냥에 쓰는 매(鷹)에서 나온 말이다. 남도 민요 ‘남원산성’에 나오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가 바로 사냥용 매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매를 사육하고 사냥을 맡는 응방(鷹坊)을 둘 만큼 매사냥에 관심이 높았다. 매사냥이 유행하다 보니 사냥매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매 관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얇게 깎은 네모꼴의 뿔에다 매의 이름과 종류, 주인 이름 등을 적어 매의 꽁지에 단 게 ‘시치미’다. 그러니까 시치미는 매의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견물생심이라고 남의 매에 달린 시치미를 떼고 자기 시치미를 매다는 경우가 생겨났다. 여기서 생긴 말이 ‘시치미를 떼다’이다.
시치미의 어원은 뭘까.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스치다’에서 파생된 ‘스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스치미’가 시치미로 변했거나, ‘스침’에서 변한 ‘시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시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시치미를 잘 떼는 사람 중에는 ‘반죽 좋은 답변’을 하는 사람이 많다. ‘반죽’은 ‘변죽’으로 써야 맞는 것 아니냐는 독자들도 있을 줄 안다. 그렇지 않다. 반죽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 갬’이라는 뜻 말고 ‘뻔뻔스럽거나 비위가 좋아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는 성미’라는 뜻도 갖고 있다. 즉 ‘반죽이 좋다’는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변죽은 ‘그릇이나 세간, 과녁 따위의 가장자리’를 뜻한다. 변죽이 좋다는 건, 그야말로 그릇 따위의 가장자리가 좋다는 뜻인데 ‘반죽이 좋다’라는 의미는 없다. ‘5차 청문회는 변죽만 울린 요란한 빈 수레에 그쳤다’처럼 변죽은 ‘변죽 울리다’ ‘변죽을 치다’ 꼴로 써야 옳다. 사실의 핵심을 파고들지 않고 곁가지에 매달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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