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가 28일로 꼭 1년을 맞이하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10명 중 7명꼴로 심각한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지 않은 할머니는 합의에 반발해 일본 정부가 출연한 현금의 수령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갈등의 골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 생존자 38명 중 26명 ‘우울-불안’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10월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239명 중 국내 생존자 38명(국외 거주 2명 제외)을 전수 조사해 작성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과 우울감 탓에 생활에 지장이 있다”라는 응답이 전년 65.1%에서 68.4%로 늘어났다. 위안부 실태조사는 2010년부터 시행됐지만 12·28 합의 이후 생존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 중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새로 진단받은 사례도 있었다. 일본 정부가 한일 합의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명의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지만, 대다수의 할머니는 여전히 수십 년 전의 피해를 괴로워하며 후유증을 호소한다는 뜻이다. 한 간병인은 “지금도 할머니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며 괴로워한다”고 전했다.
○ 시각 엇갈리는 피해 할머니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약 110억 원)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거세다. 합의 당시 생존했던 피해자 47명 중 34명은 ‘화해·치유 재단’을 통해 현금 1억 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13명 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이나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자 등 10명은 한일 합의를 원천 반대한다며 현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12·28 합의에 반대하는 김복동 할머니(90)는 26일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이를 받아들이면 마치 우리가 자발적으로 동원됐다는 잘못된 결론이 내려지는 것 아니냐”며 “일본이 공개적으로 사죄해 우리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합의에 동의하는 할머니도 이를 드러내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최근 ‘나눔의 집’에서 나와 현금 수령을 신청한 이모 할머니(90)는 “합의 내용이 분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총리가 저만큼이라도 사과하는 것을 듣게 돼 마음이 누그러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자신의 이 같은 견해가 주변에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 한일 정부 “위안부 합의 이행해야”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야권은 위안부 합의를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실정(失政)으로 규정하는 등 ‘합의 파기’와 ‘재협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이 합의를 백지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아사히신문은 27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등을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꼽고 “반 총장 외에는 모두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합의 이행을 지속할 방침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재단이 출범해 사업을 실시하는 등 위안부 합의가 충실히 이행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앞으로도 피해자 명예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도 이날 “양 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로 약속한 만큼 이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이달 6일 박숙이 할머니(93)가 별세해 39명이 됐다가 최근 국내에서 피해자 1명이 추가로 확인, 등록돼 총 40명이 됐다.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가 고령인 점을 감안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도입하고, 자녀들의 심리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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