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대선 주자들이 쏟아 놓은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13일 발언이다. 이날 충남 천안시 충남북부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충남경제포럼 조찬 특강 강연자로 나선 안 지사는 다른 대선 주자들처럼 ‘새로운 대한민국’을 화두로 삼았지만 내용은 사뭇 달랐다.
안 지사는 “촛불 광장과 대한민국의 이 커다란 전환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구의 의미는 ‘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겠지만, 시민과 주권자로서의 의무도 절대로 방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여전히 이 국면에서 정치는 ‘나 대통령 시켜 주면 내가 해줄게’의 관점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는 국민의 권리를 강조하고,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의 동전의 뒷면에는 국민의 의무와 국가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권리와 의무를 우리가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면 ‘똑똑한 대통령 하나 뽑아 팔자 고쳐 보자’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곧, 또 실망감이 몰려올 것이다”라고 했다.
그즈음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기각을 결정하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했다. 이른바 촛불 민심을 광장민주주의로 찬양하던 때였다. 유력 정치인들이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이며 국민 된 권리를 떠받들던 때였다. ‘이 위대한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 대개조를 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구애하던 때였다.
그런데 안 지사는 ‘눈치도 없이’ 국민의 의무를 같이 강조하고 나섰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제 정치적 리더십의 핵심은 ‘가만히 계세요. 내가 알아서 해 줄게요’가 아니다. ‘함께 합시다’이다. (국민이) 함께 해주지 않는 이상 어떠한 창의도, 혁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지율 5%를 넘기 힘든 안 지사는 ‘발이 땅에서 30cm 정도 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의 대학 은사인 도올 김용옥은 “철학을 하는 나보다 더 추상적”이라고 했다. ‘가식적으로 보인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후 안 지사의 발언은 달라졌다. “국민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속지 말라”고 했고 문 전 대표를 겨냥해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는 “대선 경선이 다가올수록 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어법을 사용하겠다. 점점 선명해질 것”이라고 자신의 ‘변화’를 해명했다. 안 지사 측은 “언론은 ‘함께 합시다’라는 뜻에는 관심이 없다. 유력 주자를 공격해야 기사가 난다. 인지도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안 지사에게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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