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무원이나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건네는 질문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죽어 나가는 닭 얘기가 아니다. 정부 부처의 ‘생사’ 여부다. 바로 국민안전처다. ‘대선시계’가 빨라지면서 과연 차기 정부에서 국민안전처 간판이 그대로 유지될지 궁금해서다.
질문 받은 사람들의 답변은 대부분 비관적이다. 그 나름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직원들의 소속감이 낮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등등.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자신이 보고 느낀 현실을 전했다. “공무원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승진이다. 그런데 국민안전처는 여러 곳이 합치거나 여기저기서 파견 온 직원이 많다. 열심히 일하고 복귀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버티고 잘 해낼 동기부여가 안 된다. 기간만 채우고 빨리 복귀하거나 아예 파견 오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출범 자체가 잘못’이라는 냉정한 의견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불거진 컨트롤타워 문제가 엉뚱하게 해양경찰청 해체를 낳았고 국민안전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마침 당시의 궁금증을 풀어줄 주장도 나왔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위원과 한 번도 상의 없이 혼자 (해경 해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력이 8000명이 넘는 정부기관의 명줄을 끊으면서 내각 논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처럼 해경 해체 결정의 배경에 ‘비선 실세’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하지만 해경 해체 결정의 문제를 떠나 국민안전처까지 사생아 취급하는 건 반대다. 그동안 수많은 재해 재난이 발생했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만들지 못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있었지만 기존 재해 재난에 익숙해진 조직이었다. 세월호 참사처럼 초유의 재난에 적절히 대응할 조직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국민안전처를 반쪽짜리로 만들어 놓고 방치한 것이다. 과거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처럼 조직이나 인사 권한도 없다. 지방자치단체를 움직일 당근이나 채찍도 턱없이 부족하다. 비상사태 때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허울뿐인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전은 걱정스럽다.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는 산업재해 피해자가 연간 9만 명이다. 또 한 해 4000명가량은 길 위에서 교통사고로 숨진다.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기존의 경험과 정책으로 대응 불가능한 재해 재난은 어찌할 것인가. 안전 전문가들은 미래사회의 ‘블랙 스완(Black Swan)’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상하기 힘든 ‘검은 백조’처럼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위기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정부나 사회의 예측능력을 벗어난 재난 재해가 닥쳤을 때 지금의 국민안전처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음 정부에서는 국민안전처의 간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꿔 달아야 한다. 그리고 안전부총리를 신설해야 한다. 안전은 경제 사회 교육 등 특정한 어느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경제부총리나 사회부총리가 담당하는 영역 그 이상이다. 안전은 이것저것 다 처리하고 시간 남을 때 하는 나랏일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대형 재해 재난이 정부의 실패까지 불러온 현실을 지금 우리는 생생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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