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25일 국회 한보 청문회.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출석했다. 공직 인사에서 공천 개입까지, 의혹의 중심에 선 ‘원조 비선 실세’였다.
“이○○ 사정1비서관, 전○○ 정책수석도 천거했느냐”라는 질문에 현철 씨는 “나와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지만, 아버님과도 잘 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추천했느냐”라고 묻자 “아버님께 직접 말씀드렸다”라고 했다. “총선 여당 후보를 (YS에게) 추천했느냐”라는 물음엔 “몇 명 되진 않지만 과거 고생하던 분들이다” “강삼재 당 사무총장과 이원종 정무수석에게도 얘기한 적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구체적 인사를 거론한 게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말했다”라고 답했다. 19년 뒤 같은 주제로 벌어진 ‘최순실 청문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끈한 자백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은 현철 씨의 국정 개입 하이라이트였지만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등 훗날 거물이 된 정치인들이 줄줄이 정계에 입성한 ‘YS 키즈’의 탄생기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공천에 관한 한 “농단이 있었더라도 성공한 농단”이라는 말이 정설로 나돌았다. 그 이전에 YS가 발탁한 이인제 손학규 이명박 노무현 등도 대선 주자급으로 커가고 있었다.
이런 자부심 때문인지 YS는 퇴임 후에도 자신의 키즈를 볼 때면 뿌듯해했다. 2011년 7월 홍준표 경남지사가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돼 기자들과 상도동을 찾아가니 YS는 “내가 역시 공천을 잘했던 기야”라고 했다. 홍 대표가 “‘YS 키즈’ 아닙니까”라고 장단을 맞추자 “거긴(서울 송파갑) 제일 (당선되기) 좋은 데였지”라고 한술 더 떴다. 홍 대표가 “그땐 연탄 아파트가 많아 좋은 데가 아니었다”라고 받아치자 YS는 “내가 안 될 데를 보냈단 말이가?”라고 짐짓 버럭할 정도로 웃음과 애정이 가득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심판 심리가 속도를 낼수록 조기 대선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YS 키즈, 김대중 노무현 키즈들은 아직도 대선 주자로 입길에 오르는데 ‘박근혜 키즈’는 찾아볼 수가 없다. 법조계 소문을 들으니 이유를 알 법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에 연루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변호사를 구하면서 이곳저곳에 무료 변론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도 지인을 통해 “싼값에 변호를 맡아 줄 사람 없느냐”라고 알아보고 다녔다 한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과 재력가(최순실) 밑에 18년을 있었지만 모아 둔 재산도 별로 없고 빠듯한 공무원 월급으로 변호사 비용이 감당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이 도와줄 리도 없고…”라고 전했다.
대통령과 18년 정치인생을 함께한 ‘문고리 3인방’이 이런 지경인데 누가 박근혜 키즈를 자처할까. 총무비서관의 통보를 받고 청와대를 떠날 때 대통령 얼굴 한 번 못 보고 겨우 짐만 싸서 나간 수석비서관이나 배신자라고 공개 낙인찍힌 비서 출신 정치인의 심정도 그렇겠지만 감방 바닥은 더 차다. 나를 위해 일한 사람에게 변함없는 감사와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동지도 후계자도 없다는 게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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