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위원장직을 수락한 뒤 측근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인 위원장은 애초 “내가 ‘난파선’의 선장을 맡을 이유가 없다”며 위원장직을 고사했다. 하지만 정우택 원내대표가 “전권(全權)을 드리겠다”며 삼고초려하자 수용했다. 이어 비대위원장으로서 공식 업무에 들어간 첫날,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의 자진 탈당이란 ‘핵폭탄’을 터뜨렸다. 인 위원장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위원장직을 던질 태세다. 99석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은 앞으로 1주일, 또다시 ‘운명의 시간’을 맞게 됐다. ○ 친박계 목에 칼을 겨눈 인명진
인 위원장은 30일 기자들을 만나 “인적 청산이 안 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비대위 구성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친박계의 자진 탈당이 없으면 ‘인명진 비대위’도 없다는 얘기다. 인 위원장까지 물러나면 중도 성향 의원들이 추가 탈당 대열에 합류하면서 새누리당은 사실상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인 위원장은 이날 인적 청산 부류를 크게 네 갈래로 나눠 지목했다. 우선 “당을 이끌었던 사람 중 남아 있는 이들”이다. 이정현 전 대표를 비롯해 서청원 전 최고위원 등 친박계 지도부가 여기에 속한다. 인 위원장은 또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들어가 대통령을 잘못 모신 이들”도 인적 청산 대상으로 꼽았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을 지목한 셈이다. 이어 “4·13총선에서 당의 분열을 조장하며 패권적 행태를 보인 이들”과 “상식에 어긋나는 지나친 언사를 한 이들”의 자진 탈당도 요구했다. ‘친박 돌격대’로 불리는 조원진 이장우 전 최고위원과 윤상현 김진태 의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인 위원장은 자진 탈당 시한을 내년 1월 6일로 못 박았다. 인 위원장은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두세 차례 강도 높은 인적 청산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 인명진의 초강수 승부수 통할까
인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인적 청산 구상과 관련해 “정우택 원내대표를 포함해 이걸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단독 플레이’라는 얘기다. 인 위원장 승부수의 성패는 결국 중도 성향 의원들의 지지 여부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도 인 위원장이 사퇴하면 속수무책인 만큼 ‘암묵적 지지’를 보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일각에선 인 위원장이 친박계를 배제한 뒤 개혁보수신당(가칭)과 다시 결합하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인 위원장은 이날 김무성 의원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보수신당 인사들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갈 일도 없지만 만약 가려면 거기(보수신당)로 갔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인 위원장 측은 “그런(보수신당과의 재결합) 생각까지 할 겨를조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가 자진 탈당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인 위원장이 스스로 사퇴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친박계 핵심 인사들의 탈당 결단을 요구하면서 “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설한 사람인데, 영구 제명을 당했다. 평생의 내 명예를 다 잃었다”고 했다. 인 위원장이 이런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친박 핵심 청산’이란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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