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 보고서는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물론이고 향후 대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특히 개헌 저지 의도를 담은 보고서가 일부 친문(친문재인) 인사들에게만 전달된 것에 대해 비문(비문재인) 의원들이 격양된 반응을 보이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일 입수한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원은 “당은 개헌의 시기보다 개헌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적극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이는 “개헌에 찬성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문재인 전 대표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보고서에는 문 전 대표를 사실상 당 대선 후보로 규정하는 듯한 대목도 들어 있었다. 연구원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3지대에서 결집한다면 ‘비문 연합과 문 전 대표’의 선거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어 당의 크나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또 “문재인 전 대표나 추미애 대표가 대선 전 개헌 반대론을 고수하는 것은 비문 전선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전략적 수정을 시도해 (개헌론의) 사전 차단 또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개헌을 전제로 한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 대선 결선투표에 대해서는 “임기 단축은 전향적인 입장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 도입은 최대한 모호성을 견지해도 좋을 것”이란 입장을 취했다.
연구원은 개헌의 방향도 제시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안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제3지대로 모이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며 “당은 입법권과 예산권을 국회에 넘긴 순수한 대통령제 차원의 개헌 추진 전략을 선도해 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김종인 전 대표를 비롯한 비문 진영 개헌파들은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는 4년 중임제를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29일 작성돼 일부 친문 인사에게만 친전으로 전달됐다. 국회 개헌특위 소속 한 의원은 “당 공식 기구가 만든 개헌 관련 보고서를 특위 소속 의원들에게도 전달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비문 진영은 김용익 연구원장이 친문 인사라는 점에서 친문 진영을 의심하고 있다. 한 비문 의원은 “문 전 대표의 개헌 등 현안 관련 발언과 보고서의 내용이 너무나 흡사하다”며 “당이 사당(私黨)으로 전락했다”고 성토했다. 일부 의원은 4일 국회 개헌특위 첫 전체회의 때 이 보고서의 작성 경위 등을 문제 삼을 태세다.
이에 앞서 연구원은 당 대선 후보 경선 관련 보고서를 지도부를 포함한 일부 의원에게 배포했다가 다음 날 곧바로 회수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전 대표 측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개헌 보고서 작성 경위 등은 전혀 알지 못 한다”며 “왜 연구원이 일부 인사에게만 보고서를 전달해 논란을 자초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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