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인과 그의 사적 관계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정부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열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큰 요즘이다. 민주주의도 하나의 정치 체제다. 따라서 군주정, 귀족정, 공화정이라 하듯이 민주정이라고 표현해야 더 좋을 때도 많다. 17세기 중반 시작된 현대 민주주의의 긴 여정 동안 사람들은 그들의 열망을 ‘민중 정부(popular government)’라는 용어에 담아 표현했다. 1863년 링컨의 말로 유명한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이란 표현 역시 정부 또는 통치를 뜻하는 ‘government’를 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좋은 정부를 통해 사회를 좀 더 공정하고 자유로우며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정부나 통치의 질서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정부나 통치에 저항하고 항의하는 것만을 민주주의로 여길 때가 많다. 정당이나 정치 집단을 ‘민주주의에 반하는 존재’ 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할 대상들’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과거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일이지만, 제목에 민주주의가 있으면 표지 디자이너가 대개는 시위하는 모습을 형상화해 흥미롭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시위하고 항의만 할 수 있을 뿐, 그런 국면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정치가 시민과 분리되는 사이클로 돌아가는 것을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왜 우리는 정치나 정부를 시민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자 평범한 보통의 시민들을 위한 것, 나아가 그게 민주주의의 본령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걸까.
민주주의는 ‘시민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 통치권을 독점한 군왕이나 소수 귀족이 지배하는 체제를 시민의 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치체제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자유시민이 있어야 하고, 또 그들이 살 만한 집이라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사회든 시민은 동질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이해와 열정을 가진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익이라고 불리는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시민들 사이에 이견도 크다. 그런 다양한 생각과 이익, 열정을 표출하는 자유로운 결사체들이 활동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그러지 못하게 막거나 제한하면 권위주의 체제로 퇴락하게 된다. 그런 결사체들로 넘쳐흐르는 시민사회가 공동체의 기초 또는 기반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가치를 갖는다. 가난한 시민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결사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을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집단이란 구성원들의 공동 이익을 진작하기 위한 결사체를 가리키는데, 약자들이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을 이기적이라 비난하면,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강자 집단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다만 자율적 결사체는 너무 다종다기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과 열정을 모은다고 해서 공익이 도출되지는 않으며, 자칫 더 큰 사회적 분열과 상처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당정치다. 정당이란 특정의 정견을 공유하는 시민 집단으로, 그들 가운데 누가 주장하는 공익이 ‘현실적 최선’인가를 두고 경합하는 것을 민주정치라 한다. 그런 정당정치가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집을 단단히 떠받치는 복수의 기둥 역할을 해야 갈등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자발적 결사체라는 집의 기반과, 정당정치라는 집의 기둥이 튼튼해야 그 집에 기거하는 시민들의 공동체가 안정될 수 있고, 그 위에서 좋은 민주적 덕성과 시민 문화가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시민의 집을 한 번에 세울 수는 없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통치자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것까지는 했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잘못된 정권의 교체와 더 좋은 정부의 출현, 더 나은 정당정치를 향해 변화를 이어갔으면 한다. 가난한 시민들과 약자들을 보호하는 공공 정책의 혜택도 넓어졌으면 한다. 그런 변화는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란 시민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치 일반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낡은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은 중요하다. 자유시민에게 정치, 정부, 정당은 유력한 민주적 수단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돌아보고 그 미래를 논의하는 정치학자 박상훈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필자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를 지냈고 ‘정치의 발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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