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첫 변론]朴대통령 출석 안해 9분 만에 종료
헌재소장 ‘공정’ 강조→ 박한철 “大公至正 자세로 최선 다해 심리”
靑, 여론전 병행 전략→ “헌재 결정, 여론 영향 받을 수밖에 없을것”
국회 소추위원단 비판 “법정밖서 일방 해명은 헌재에 예의 아니다”
朴대통령 변호인 항변 “노무현 前대통령도 출석 안했다” 맞받아쳐
5일 2차 기일이 정점… 안봉근-이재만 등 ‘靑 키맨’ 4인 증인 채택
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재판관들이 입정하기 30분 전부터 헌재 관계자와 취재진, 일반 방청객이 차례로 입장하며 좌석이 빼곡히 채워졌다. 하지만 법대 한가운데 박한철 헌재소장 좌석 바로 맞은편 아래쪽에 놓인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2016헌나1호 대통령 탄핵사건 심리를 진행합니다.”
오후 2시, 박 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개정 선언을 했지만 비어 있는 대심판정 증인석의 주인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첫 변론기일에 스스로 공개 변론할 기회를 거부했다.
○ 박한철 소장, ‘공정’ 표현 세 차례 언급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 탄핵심판의 첫 변론기일은 단 9분 만에 끝났다. 탄핵심판의 피소추인이자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변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헌재는 이 사건을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할 것”이라며 공정한 심판을 다짐했다. 박 소장은 ‘매우 공평하고 지극히 올바르다’는 뜻인 대공지정이란 표현을 포함해 3차례나 ‘공정’이란 단어를 반복해 언급했다.
헌재는 이날 향후 증인신문 일정 등을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가 헌재에 접수된 지 25일 만이다.
○ 스스로 공개변론 기회 거부한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의 불출석은 예상됐던 일이었다. 국회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거나 해명할 기회를 거부하면서 증인석에 앉아 국회 소추위원단과 헌재 재판관들의 직접 신문을 받는 부담을 회피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불출석은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증인석에 앉아 소추위원이나 재판관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말실수를 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임기응변 능력이 좋지 않은 박 대통령이 대리인단을 통해 정리된 의견만 밝히는 게 방어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박 대통령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탄핵심판의 큰 변수인 ‘장외 여론전’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여론이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나쁜 상황이면 헌재도 (탄핵 인용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은 여론을 반전시킬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각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15% 안팎으로 나타난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도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최저 4%까지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이 가라앉고 전통적 지지층이 재결집하면 전세를 뒤집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분석이다.
○ “박 대통령 불출석은 헌재에 대한 예의 아냐”
박 대통령의 불출석을 놓고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장외 설전’을 벌였다. 변론기일이 끝난 뒤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장은 기자들과 만나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탄핵 법정 밖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 간담회를 갖고 일방적인 해명을 한 사실을 거론하며 불출석을 비판한 것. 이에 대해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첫 변론기일에 출석) 안 했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헌재 안팎에서는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는 차이가 많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불출석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지만 자신의 발언과 행위가 탄핵사유는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대부분의 기본적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검찰이 완전히 나를 엮었다”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따라서 헌재 재판관들로서는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나와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직접 얘기하는 것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 5일 변론기일이 탄핵심판 ‘정점’
헌재의 탄핵심판은 다음 변론기일부터 증인신문을 거치며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5일 열리는 2차 변론기일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안봉근, 이재만 두 전직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사실상 최순실 씨의 ‘수행비서’ 역할을 한 이영선, 윤전추 행정관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들은 베일에 가려진 박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생활을 가장 잘 아는 최측근으로 탄핵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열린 국회 청문회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고 언론 등을 통한 공개 발언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헌재 재판관들은 이 증인들을 통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에서 비롯된 박 대통령의 관저 생활 의혹과 국정 농단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들은 5일 변론기일에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도 있다. 4명 모두 증언대에 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박 대통령 측의 ‘심판 지연 전략’이라는 비난이 일 것으로 보인다. 네 사람 다 박 대통령 측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탄핵심판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반복적으로 헌재의 증언 채택에 응하지 않는다면 탄핵심판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선 조기 대선을 예비하고 있는 정치권이 혼돈에 빠지고,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리더십 부재 상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
10일 열리는 3차 변론기일도 중요하다. 최순실 씨에 대한 직접 신문이 예정된 데다 박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비롯해 검찰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공범으로 지목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도 증인석에 서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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