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초 6일까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이 자진 탈당하지 않으면 8일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인 위원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퇴각이 아닌 돌진 선언이었다. 탈당을 거부한 서 의원 등에겐 ‘절제된 인적 청산론’으로 맞섰다. 당내 장악력에서 자신이 우위에 섰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국민참여형 비대위’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친박계 핵심부에 상당한 타격을 준 만큼 이제 ‘인명진식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 우군 등에 업고 ‘서청원 고립’시킨 인명진
인 위원장은 이날 “오늘의 국정 파탄은 몇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패권 정치, 패거리 정치, 소통 부재, 밀실 정치에 의한 사당(私黨)화의 결과”라며 “당분간 진통은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진통은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모의 아픔이자 찬란한 아침이 오기 전 잠시의 어둠”이라고 했다. 친박계 핵심들이 아무리 반발해도 여론과 시간은 자기편이란 얘기다.
직접 기자회견문을 작성한 인 위원장이 가장 고심한 문구는 ‘절제된 인적 쇄신’이라고 한다. 인 위원장 측 인사는 “서, 최 의원만 확실한 공적(公敵)으로 지목하고 나머지는 우군으로 안고 가겠단 의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했다”고 말했다. 다른 친박계의 동요를 막기 위해 손수 ‘절제’란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선 서 의원 등이 버티면 강제로 밀어낼 방법은 마땅치 않지만 이미 이들의 손발을 묶은 만큼 ‘인적 청산 국면’에서 사실상 인 위원장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당 소속 의원 99명 가운데 68명(68.7%)이 인 위원장에게 자신의 거취를 백지위임했다. 현 사태를 관망하는 일부 중도 성향 의원을 제외하면 서 의원에게 동조하는 친박계를 10명 안팎으로 묶어놨다는 얘기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인 위원장의 자택을 찾아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그림자처럼 묵묵히 지원할 테니 구원의 빛이 돼 달라”고 요청했고 인 위원장은 “국민의 뜻만 바라보고 판단하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날 사실상 친박계로부터 공천장을 받은 비례대표 의원 12명이 인 위원장 지지 선언에 동참한 데 이어 9일에는 초선 의원 30여 명이 같은 성명을 낼 예정이다.
○ 서청원 “법적 대응 불사”
인 위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서 의원은 “각종 우호적인 당내 기구를 동원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 위원장에게 거취를 백지위임한 의원들의 실명 공개도 요구했다. 서 의원은 “당 지도부에 고백성사를 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암흑기 중세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퇴행적 행태”라고 날을 세웠다. 서 의원은 인 위원장과 정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위계와 강압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 위원장은 서 의원의 반발에 또다시 농담조로 받아쳤다. 서 의원의 고발 방침을 두고는 “오랜만에 별(전과·前科) 하나 더 달게 생겼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두 차례 투옥된 경험이 있다.
그 대신 인 위원장은 이날 인적 청산에 이은 ‘정책 쇄신’에 무게를 뒀다. 그는 “당 회계 감사를 추진하고, 당 조직이나 기구, 관행들도 과감하게 고치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이런 구상을 실현할 비대위를 구성하기 위해 9일 곧바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연다. 앞서 6일 상임전국위는 친박계의 보이콧으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인 위원장은 ‘상임전국위가 또다시 무산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무산되면 열 번이라도 다시 소집하겠다”고 했다.
비대위원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포함된다. 이후 청년과 농민, 비정규직 등 정치 취약계층에서 비대위원을 공개 모집할 계획이다. ‘국민참여형 비대위’가 인 위원장의 첫 쇄신 밑그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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