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저지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직후 예상됐던 정치, 경제, 군사적 대응방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형국이다.
송영길 박정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베이징 방문 외교(4∼6일), J-11 등 최첨단 전투기 12대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9일)에 이어 알려진 한국산 화장품 19개 수입 불허 조치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세 분야별 대응조치를 상징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해 중국 외교의 성과 중 하나로 ‘사드 반대’를 들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영토주권 수호를 신년사에 들고 나온 뒤 쏟아지는 일련의 조치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사드 배치의 주체인 미국, 부산 소녀상 설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미일 3각 협조체제를 동시에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한국에서도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한미 양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사드 배치를 무효화하려는 계산된 강공이라고 분석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대선 일정이 정해져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보복 조치의 강도가 지금보다 훨씬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한국 내에서 사드가 논란이 되고 시끄러워지는 걸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3일 공식 발표된 지난해 11월 수입분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의 한국 화장품 무더기 통과 불허 조치는 경제 무역에 대한 조치 범위가 확대되고 엄격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류 연예인 출연 금지 및 한국 드라마 방영 중지 등 ‘한한령(限韓令)’에 이어 한류(韓流)를 대표하는 품목인 화장품에 대한 손보기에 나선 것은 타격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화장품 통관을 엄격히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영 언론을 동원해 한국에 간 관광객에게도 구입을 억제하도록 선동하고 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7일 ‘한국이 사드 때문에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시론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면 한국 화장품 때문에 한국으로 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익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9일 첨단 전투기 12대를 KADIZ에 들여보낸 것은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대응이라는 의미가 크다. 지난해 11월 중국 군함 100여 척이 서해에서 실탄훈련을 벌이고, 12월에는 첫 항모인 랴오닝(遼寧) 함이 보하이(渤海) 만에서 실탄훈련을 벌여 사드 배치에 대해 무력시위를 벌였으나 모두 간접적인 조치였다.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보란 듯이 관통해 지나가고 다시 같은 하늘 길을 되밟아 왔다.
한국 내 정치적 혼란과 한미일 3각 협조 체제의 균열을 틈탄 중국의 사드 반대 책동은 향후 한반도 주변 정치 일정에 따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은 송 의원 등 방중 의원들에게 “사드 배치를 가속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야당이 차기 정권을 차지하면 사드 정책이 달라질 수 있음을 기대한 것이자 새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더 강한 조치들을 내놓겠다는 사전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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