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11일 페이스북에 2004년 6월 21일 김선일 씨 피랍사건 당시 노 대통령의 대처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분 단위까지 밝힌 일정표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오전 6시 59분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에게서 보고를 받자마자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 등과 아침을 먹으며 상황을 점검했다. 이어 본관 집무실로 옮겨 오전 9시부터 2시간 반가량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대처는 23일까지 계속됐다.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은 “노 전 대통령도 김선일 납치사건 당시 관저에 머물며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의 대처 소홀 지적에 대한 맞불 대응이었다. 그러나 참사 당일 오후까지 관저에서 주로 서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과 보고받은 즉시 대책을 숙의하며 아침을 먹고 곧바로 본관 집무실로 나온 노 전 대통령과의 차이는 크다. 노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서면보고가 없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26번이나 보고받고 지시한 박 대통령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혹이 일 때마다 뒤늦게 부인하는 데 그치고 사건 발생 2년 6개월이 지나서야 대처 내용을 공개하는 등 소극적 대응이 화를 키웠다. 특히 박 대통령 대리인 측이 세월호와 무관한 전화는 통화기록 증빙자료까지 내면서 10번이나 했다는 세월호 관련 전화는 통화기록을 전혀 제출하지 않은 것도 변호인단 주장의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 측이 세월호 대처를 합리화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데 대해 누리꾼은 물론이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지적이 나온다. 견강부회란 청(淸)나라 말기 쩡푸(曾樸·1872∼1935)의 견책(譴責)소설 ‘얼해화(얼海花)’에서 나온 말이다. 꼼수와 견강부회는 상대가 올바른 대응 방법을 제대로 모르거나 진실을 모를 때 효과가 크다. 하지만 정수로 대응하거나 진실이 드러나면 역효과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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