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이 18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430억 원대 뇌물을 준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뇌물죄’ 성립 여부를 놓고 4시간 가까이 공방을 벌였다.
특검은 파워포인트(PPT)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상대로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에 맞서 조 부장판사에게 7000쪽이 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구속영장 기각을 호소했다.
조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9일 새벽까지 방대한 양의 특검 수사 자료와 이 부회장 측의 의견서를 검토했다.
○ 특검 “박 대통령 요구 들어주고 경영권 승계 도움 받아”
18일 오전 10시 반 열린 영장심사에 특검 측에서는 양재식 특검보(52·사법연수원 21기)와 김영철 검사(44·33기) 등 4명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송우철 변호사(55·16기) 등 6명의 변호인단이 참석했다.
양측이 가장 치열하게 다툰 쟁점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과 최 씨 모녀에게 지원한 돈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였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재단 출연과 최 씨 모녀 지원을 요청했으며, 그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며 ‘뇌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 2014년 말 승마협회 주최 ‘승마인의 밤’ 행사 당시 삼성 측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의 참석을 막은 사실 등을 들어 “삼성이 오래전부터 최 씨의 실체를 알고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 이 부회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내 경영권 승계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합병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합병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부라는 특검의 ‘밑그림’ 자체가 틀렸다는 것.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직접 변론을 하자 변호인들도 이 부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폈다.
변호인단은 “삼성의 재단 출연과 최 씨 모녀 지원은 모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에 이뤄졌고, 그마저도 박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부정한 청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을 독대해 “승마 지원이 더디다”며 강하게 질책해 어쩔 수 없이 최 씨 모녀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 부회장은 최 씨 모녀 지원 사실을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 멈춰 선 삼성
이날 삼성그룹 전체가 멈춰 섰다.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마다 열려 온 ‘수요 사장단 협의회’가 취소됐다. ‘삼성 특검’ 여파로 사장단 인사가 미뤄지며 수요 협의회가 안 열렸던 2009년 1월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매년 1월 하순 열리던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신제품 발표회도 늦춰지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사 안팎으로 뒤숭숭한 상황이라 화려한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이날 착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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