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여파로 빚어진 조기 대선 정국에서 ‘50대 기수론’이 꿈틀대고 있다. 촛불 민심으로 대표되는 성난 민심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체제 교체)’ 수준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 대선 주자 중 상당수가 50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아직 현실의 벽은 높다. 초기 대선 레이스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64)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73)이 앞서가는 형국이다. 앞당겨진 대선 시계 속에서 50대 기수들의 반전이 가능할까.
○ 경험, 경력으로 무장한 ‘50대 기수’
현재의 50대는 일제와 전란을 극복하고 고도성장 시대를 산 ‘산업화 세대’와는 다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19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내며 직간접으로 민주화 흐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잇는 박근혜 정부의 파탄으로 산업화 시대에서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며 “세대교체를 통한 산업화 세대의 2선 후퇴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대적 상황이 ‘50대 기수론’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50대 주자들이 대체로 탄탄한 정치 이력과 경험으로 무장한 점도 이들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민주당 김부겸,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각각 ‘지역주의 타파’와 ‘개혁 보수’라는 브랜드를 가졌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행정 경험을 갖췄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각각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노동자 출신이라는 스토리를 가졌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의 50대 기수들은 정치 경력, 행정 경험, 도덕성 측면에서 예전 ‘젊은 피’보다 비교적 조건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야권은 문 전 대표를, 범보수 진영은 반 전 총장을 내세워 대세론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들이 시도하는 대세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 본인들이 제공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강력한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지지라는 정치적 자산을 가졌지만 동시에 확장성 부족이란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반 전 총장 역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 검증을 받은 적은 없다. 두 유력 대선 주자의 이런 불안정성이 50대 기수론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아직 ‘안정적 지도자’라는 믿음 못 줘
이런 시대적, 정치적 여건에서도 50대 기수들의 지지율은 현재 그리 높지 않다. 19일 발표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9.0%)과 안 전 대표(7.4%)를 제외한 다른 50대 주자의 지지도는 5%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여권에서는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야권에서는 친문(친문재인) 진영이 각각 당 운영을 일정 기간 주도한 결과 50대 주자들이 정치 세력화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4·13총선에서 친박, 친문 세력이 공천을 주도했기 때문에 비주류 주자들은 현역 의원 가운데 우군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50대 주자들이 안정감 있는 지도자란 인식을 여전히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 교수는 “현재의 엄중한 시대를 이끌고 가기엔 50대 주자들의 경험이 부족하고 불안하다는 인식을 국민은 갖고 있다”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희망하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안정감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50대 주자들이 유권자들의 ‘세대교체’ 요구에 부응하는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까지는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대선 레이스를 이끌고 있는 모양새지만 50대 주자들은 마지막 반전을 노리고 있다. 남 지사와 안 지사는 공동 공약을 발표하는 정치 실험을 보여주며 참신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가 손을 맞잡는 모습은 기존 정치 문화에서는 파격에 가깝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기 대선은 어필할 시간이 짧아 ‘도전자’인 50대 주자들에게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이들이 이번에 성공하지 못해도 정치 개혁에는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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