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부장판사에 대한 각종 유언비어에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조 부장판사와 관련해 “삼성 장학생 출신으로 삼성그룹 법무실장으로 갈 것이다” “아들이 삼성 취업을 약속받았다”는 헛소문이 인터넷에 난무하자 법원이 나선 것이다. 조 부장판사에겐 아들이 없다. 사이버 공간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를 맡은 판사의 신상 정보도 돌았다. 영장 발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장 기각 판사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판치는 데는 유전무죄(有錢無罪) 같은 법에 대한 불신 탓이 클 것이다. 대통령과 삼성 총수가 정경유착을 했을 것이라는 박영수 특검의 ‘그림’이 무너진 데 따른 실망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대가관계와 부정 청탁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분명히 밝혔다. 한마디로 증거 부족이라는 얘기다. 법원의 판단에 반론을 펴고 유감을 표시하더라도 거짓까지 만들어내 ‘인격살해’를 저지른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도를 넘는 행태는 법원에 대한 매도와 폄훼를 일삼는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 이후 야당에선 “법이 정의를 외면하고 재벌권력의 힘 앞에 굴복했다”는 등 법리적 논박 아닌 감정적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법률상 분쟁에 대한 최종 판단을 맡은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특히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일반 국민보다 무게 있게 처신해야 한다. 자신들의 뜻과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사법부를 비난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계속된다면 법치주의 확립은 요원하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 후 나타난 우리 사회 일각의 일그러진 행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이후 벌어질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당장 찬반 진영에선 불복운동이 일어날 게 뻔하고, 온갖 선동도 난무할 것이다. 촛불 민의는 헌법 위반 혐의가 있는 대통령도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으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까지 승복하는 것이 헌법정신이자 법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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