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에 밀린 탄핵’이라는 외신, 민심이 야수 된 이유 아는가
정경유착도 지긋지긋한 판에 최순실까지 대통령과 유착했다
법치 존중하는 민심 원한다면 ‘힘 있는 자들의 국가’ 아닌 ‘우리 모두의 국가’ 느끼게 하라
“한국에서 민심은 법 위에 있다” “사법기관도 민심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닉슨 탄핵의 경우 2년이 걸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범죄가 확정되기 전, 검찰의 의견만으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 민심에 밀린 것이다.”
영국인으로 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냈던 마이클 브린의 말이다. 워싱턴포스트그룹이 발행하는 ‘포린폴리시’에 실린 글과 관련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말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는 이렇지 않다.”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을 좋아하고 걱정해 온 사람의 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잠시 역사가 어디로 흐를까 생각해 보았다. 세월이 흘러도 이럴까? 아닐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치건 보다 완전한 법치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둥이 되고 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나라가 온전하게 영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훗날, 그런 법치의 세상에서 살게 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볼까? 마이클 브린의 눈으로 우리를 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설명을 하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섰으며, 또 어떻게 이들의 민심이 그가 말하는 ‘야수’가 되었는지를.
우선 사는 게 힘이 든다. 일에 눌리고, 돈과 사람에 눌려 산다. 언제 그 무게를 좀 덜게 될까?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기대를 건다면 국가인데 이 또한 믿을 수가 없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강하다. 심지어 힘 있는 사람들과 유착하며 그들을 위한 법과 원칙을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 힘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가져가고, 힘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어려운 삶을 산다. 이를테면 가장 정의로워야 할 대학에서조차 신분이 불안한 계약직 교수는 정규직 교수와 같은 일을 하고도 보수는 그 몇분의 일을 받는다.
왜 분노하지 않겠나.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사람에게 화를 내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도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분노한다. 그러다, 보았다. 별 자격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을. “모여라” “끌어내려라”. 민심은 ‘야수’가 될 수밖에 없다. 수입 쇠고기, 세월호 등 큰일이 터지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민심은 한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법치를 흔들거나 국가의 결정으로 바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속에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전략까지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고쳐야 한다. 힘이 있는 사람들만의 국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운영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고, 선거제도와 정치제도를 고쳐 제대로 된 정치집단과 지도자들이 나오게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by the people’, 즉 ‘국민에 의한 정부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국민에 의하지’ 않고는 ‘국민의(of the people)’ 정부도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국가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를 해서 좋은 사람을 뽑는 정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시민이 제대로 된 주인이 되는 제도와 관행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오랫동안 시민은 허울 좋은 주인이었다. 이를테면 대학 운영은 학생과 교수 등 그 구성원이 아니라 국가기구인 교육부에 의해 그 틀이 짜이고 있다. 소비자 피해구제도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은 금지된 채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권을 독점하고 있다. 말만 주인이지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권위주의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형제라 할 수 있는 국가주의의 망령은 곳곳에 살아 있다. 제대로 움직이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이미 힘이 빠진 망령은 힘 있고 목소리 큰 자들의 눈치나 보고 있다. 힘없고 목소리도 약한 사람들은 여전히 피치자와 피규제자로서의 울분을 삼키고 있다. 거리로 쫓아 나갈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쉽게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다시 놓아야 하는 국가 개조의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고, 법치를 흔드는 ‘야수’와 같은 민심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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