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그제 ‘보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데 이어 어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보수 후보 단일화에 적극 호응해 주길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야 할 중심축인 건강한 보수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보수 단일화론을 거들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어제 “대선 전 개헌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 정파의 대표들로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하자”라고 제안했다. 이미 야권에서 나온 ‘개헌 매개 반(反)문재인 빅텐트’ 구상의 반기문 버전이다.
빅텐트론에 이어 보수 단일화론까지 여러 합종연횡 구상이 난무하는 형국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종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독주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보수 단일화 주장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처절한 실패에도 문 전 대표의 대북관이나 안보관에 불안해하는 보수 유권자의 심리에 기대고 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던 후보 단일화를 통해서라도 보수 진영의 대표를 문 전 대표의 대항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그만큼 큰 것이다. 유 의원도 “많은 분이 문 전 대표를 누가 이길 수 있느냐는 걱정을 하더라”며 보수 후보 단일화 역시 ‘반문 연대’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저변에는 결국 대통령 선거운동 막판에 가면 대한민국이 다시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울 것이므로 보수 표가 결집하지 않겠느냐는 정치공학이 깔려 있다. 반 전 총장이 개헌을 매개로 빅텐트론을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곤 각 정당이나 주자마다 개헌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시기나 내용에선 제각각인 상황에서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이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냥 솔직하게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고 나 반기문을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외치는 편이 메시지가 더 명료할지도 모르겠다.
보수단일화론이든, 빅텐트론이든 아직은 진영 논리가 앞서 있을 뿐 대의(大義)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단일화론이라면 무엇보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보수층을 대변하는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도를 표방하는 빅텐트론이라면 보수와 진보 양극단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고, 왜 중도의 텐트로 아울러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후보 간 연대나 단일화는 국민 여론과 지지층의 여망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 선거의 결과로 연달아 실패하는 정권을 봐야 했던 국민은 이제 과거보다 더 눈을 부릅뜨고 정체성과 비전, 정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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