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고시원에 스마트폰 모양의 타임머신이 택배로 배달된다. 소설 ‘느닷없이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5인의 고시생에게 타임머신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매력적인 탈출구다. 고시원 주인은 타임머신 쟁탈전에 빠진 청년들에게 ‘중간에 목적지를 바꾼다고 해도 배를 댈 수 있는 항구는 얼마든지 있다’고 조언한다. 현실의 고시생들이 이런 조언을 창업에 도전하는 촉매제로 활용할지, 세상물정 모르는 말이라고 폄훼할지 모르겠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유튜브의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천 등 세계적 기업의 창업자들은 모두 20대에 창업했다. 이들의 경영 행보를 분석한 벤처투자가 숀 어미라티는 창업가의 비전, 시장을 점점 늘릴 수 있는 아이디어, 문제 해결력 등을 성공요건으로 꼽았다. 대단한 비결이 아니다. 굳이 타임머신이 아니라도 길은 있다.
▷대선 주자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5일 ‘고시촌을 실리콘밸리로’라는 창업공약을 내놨다. 고시촌에 벤처타운을 세우는 정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신림동이나 노량진 등을 정보기술(IT) 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정책은 정책자금 조달창구 다양화 등 예전부터 거론된 기술적인 내용이 많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일대 실리콘밸리가 벤처의 요람이라는 시각도 옛날 얘기다. 요즘 모험가들은 동부 뉴욕으로 이동 중이다. 유 의원 측은 귀에 쏙 들어오도록 정치적 작명을 했겠지만 고시생의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기 전에 그들이 세상에 느끼는 두려움에 귀 기울였어야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어제 “‘성실실패’에 대해서는 재도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유 의원의 말과 같다. 창업 이후 겪는 실패를 상처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청년이 실패에서 배우고 진일보했다면 그만큼 중요한 사회적 자산도 없다. 될성부른 청년에게 몇 번이라도 기회를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낡은 사고에 빠져 있으면 4차 아니라 10차 산업혁명이 와도 창업으로 일자리 만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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