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7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2, 3월에 결정된다고 속단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조기 대선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야권의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탄핵 심판에 대한 헌재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대전에서 “당초 2월 말, 또는 3월 초면 탄핵 결정이 날 것이라는 예상이 불투명하게 됐다”라며 “탄핵도 안 됐는데 정치권이 너무 한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바람에 촛불 민심과 멀어지게 된 것 아니냐. 정치권은 좀 더 긴장해서 탄핵 정국에 집중하고, 촛불 시민들도 촛불을 더 높이 들어서 반드시 탄핵이 관철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채널A ‘외부자들’과의 통화에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그 이후는 혼미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아예 이날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지지자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헌재 정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은 탄핵이 완성되기도 전에 탄핵이 다 된 것인 양 방심하고 광장을 떠나버린 것 아닌지 걱정된다”라며 “탄핵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헌재는 무리한 증인 신청으로 탄핵 일정을 늦추려는 박근혜 대통령 측의 꼼수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인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기 대선 준비에 착수했지만,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이 추가로 신청한 증인을 채택하면서 2월 내 결정이 불가능해지자 지도부가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민주당은 8일 최고위원회의에 당 소속 탄핵소추위원들을 참석시켜 상황을 보고받고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헌재의 탄핵 결정이 3월 중순 이후로 미뤄지거나, 기각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슬슬 확산되고 있다. 특정 재판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인용 결정에 확신이 없는 재판관이 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변호사 출신의 한 의원은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탄핵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라며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전격 사퇴나, 증인신문 과정이 지체될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느냐”라고 했다. 한 중도 성향 의원은 “일부 대선 주자들까지 가세해 조기 대선 레이스에 불을 지폈다”라며 “지금이라도 헌재 결정이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이 이날 일제히 촛불 민심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최근 대선 주자 지지율과 연관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급상승했던 이 시장의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야권 관계자는 “중도층 공략으로 세를 불려 가는 안 지사에게 맞서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이 ‘선명성 강화’에 나선 것”이라며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독려한 것은 문 전 대표가 주장해 온 ‘정권 교체’를 재차 부각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태극기 집회’ 참석 인원이 증가하는 등 보수 진영의 재결집 움직임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헌재는 야권 일부 대선 주자들의 조속한 탄핵 인용 결정 압박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 헌재 연구관은 “정치권은 헌재 주변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라며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는 헌재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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