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는) 사람들이 어두운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비극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56)는 ‘가해자’ 모국의 과거사를 거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6일 서울 남산의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열린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1월 27일) 기념 영화주간 개막식에 참석한 아우어 대사는 “독일이 과거 학살(massacre)과 악행(atrocity)을 저질렀다”며 “독일이 내민 손을 (피해자) 이스라엘이 잡아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스라엘대사를 비롯한 주한 외교사절과 영화 관람객들이 다수 참석했다.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대사(61)는 독일대사의 감사 표시에 “잊지 않으려는 독일의 노력 덕에 이 행사도 가능했다. 이스라엘은 독일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고 화답했다. 》
○ ‘전후 최대 기적’은 ‘잊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두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스라엘의 화해를 ‘라인 강의 기적’을 뛰어넘는 ‘전후(戰後)의 진정한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잔혹했고 마음속 앙금은 깊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유대인들은 종전 후 배상 제안을 하는 독일을 신뢰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도 유대인 배상 문제는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보수 진영의 반발에 부딪혔다.
원수지간이었던 두 나라가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 두 대사에게 답을 구했다. 이들은 양국 화해의 결정적 열쇠로 정치적 합의를 꼽지 않았다. 호셴 대사는 “여전히 이스라엘 국민 중에는 ‘절대 독일 차는 사지 않겠다’거나 ‘독일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아우어 대사는 “지도층이 역사 화해를 위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며 “하지만 진정한 화해를 위해선 시민들이 이에 반응해 사회 전반적으로 ‘잊지 않기 위한’ 교류와 다음 세대 교육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와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의 리더십이 배상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끼우지만 불행했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한’ 후속 노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양국 관계는 불가능했다는 메시지다. “과거 자신의 부모님들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배우기 위해 직접 이스라엘을 찾은 독일 젊은이도 많았다”고 힘주어 말하는 아우어 대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 “한일 오가는 비행기에서 희망을 본다”
한국과 일본이 결국 좋은 관계를 회복할 것이라는 데 두 대사는 의견이 일치했다. 한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공통 가치’를 공유하는 절대 불변의 지리적 이웃이라는 것이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고 주일 이스라엘 공사를 지낸 호셴 대사는 “한일을 오가는 비행기는 항상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며 “현재 진행형인 활발한 양국 교류가 화해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 컵이 반이나 차 있다’는 식의 긍정적 관점을 통해 비관론을 극복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우어 대사는 “상대국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며 “상대국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이해의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일본인 동료(주한 일본대사)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한일 양국의 남은 과제를 잘 보여준다”며 부산 위안부 소녀상 설치 논란으로 촉발된 주한 일본대사 일시 귀국 사태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아우어 대사는 “한일이 큰 공통분모를 공유하고도 여전히 완전히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 ‘혐오의 시대’에 절망할 때 우리를 보라
뉴욕 지하철에 나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낙서가 등장할 정도로 국수주의에서 파생된 인종차별주의가 유례없는 전 세계적 인기를 보이는 지금, 아우어와 호셴 대사는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이 합세하면 언제든 전체주의와 인종 학살로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혐오 정서가 빚어낸 인류 최악의 참사를 겪은 두 나라의 대사들은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양국 공통의 책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대사는 “독일과 이스라엘도 화해했다. 이는 어떤 증오도 극복될 수 있고 평화의 정신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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