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뒤 후손들에게 나치와 독일을 구별해 가르쳤습니다.”(박재선 전 외교부 대사)
잔혹한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의 기억을 잊고 독일과 이스라엘이 화해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사죄 못지않게 그들을 용서하려는 유대인들의 노력도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외교관 출신 가운데 대표적인 유대인 전문가로 꼽히는 박 전 대사는 “독일과 이스라엘이 화해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들의 정확한 상황 인식과 미래 지향적 자세”라며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나치가 저지른 돌발적 범죄로 인식할 뿐 독일과 독일인이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 학교와 가정에선 ‘집단 학살은 나치가 저지른 만행이지, 오랜 역사에 비춰 볼 때 독일인이 항상 유대인을 증오한 것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가르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치 집권 전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는 정부 요직에 임명된 유대인이 적잖았다. 또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유대인 학자도 많았다.
박 전 대사는 이어 “국가 차원에서 강제 병합 문제가 발생한 한일 관계와 유럽 내 유대인 박해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독-이 관계는 결이 많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독일 정부도 과거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부보다는 유럽 거주 유대인들과 피해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또 유대인 권익단체들이 나치의 만행과 전쟁 피해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독일 정부에 보상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거짓 신고자’가 있는지를 자체 점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유대인들의 이런 양심적인 자세가 독일 정부와 국민에게 감동과 신뢰를 줬던 것도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KOTRA 출신으로 오랫동안 유대인을 연구한 홍익희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힘이 오늘날의 독-이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강 미국의 경제, 정치, 언론 등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에 독일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미국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스라엘은 단기간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성장했다”며 “오랜 기간 미국에 거주했어도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미국 유대인들이 오늘날의 독-이 관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지금보다 더 국력을 키우고,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들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 한목소리를 낸다면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것이 유대민족이 한국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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