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를 꺾은 곳이 광주였다. 이 후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민주당 경선을 좌지우지한다며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음모론을 제기한 이인제는 배후로 박지원 대통령정책특보를 지목했다. 박지원은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이후 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박지원은 11년이 흐른 뒤인 2013년 4월 채널A에 출연해 “이제는 공소 시효가 지나 말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뗐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무현을 대통령후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수십 번 얘기하고 열심히 설득한 끝에 김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이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받아냈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평가절하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호남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부산 출신인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줘 일약 원내 3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주 8곳에서 전패했고 호남 전체 28곳 중 3곳만 겨우 건졌을 뿐이다. 호남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야권의 적통(嫡統)마저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당을 박차고 나간 ‘호남의 사위’ 안철수의 손을 들어준 호남 민심이 지금도 그때만큼 애착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에선 DJ 이후 네 번 치러진 대선에서 호남에서 1등을 해야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사표(死票)를 만들지 않겠다는 심리가 강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 경향이 뚜렷한 곳이 호남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는 이순신 장군의 글을 인용하며 호남에 구애한다. ‘대세론’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 쏠리던 민심이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분산되면서 문 전 대표측 고민도 깊다. 안 지사는 2002년 때의 노무현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호남의 선택에 달려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