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피살]피살된 北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은
김정일 첫째부인 성혜림의 아들… 한때 사랑 독차지… 김정은에 밀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 전전
북한 당국에 의해 살해된 김정남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김정일의 후계자였다. 김정남은 1971년 김정일과 여배우 성혜림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사랑은 대단했다. 이한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우유병을 들고 아들의 오줌을 직접 받아냈고, 해마다 생일이면 100만 달러 이상어치의 장난감을 사와 김정남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진 김정남은 혈통과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열세 살 어린 김정은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에게 철저히 숨겨진 손자였지만, 김정남은 김일성과 함께 찍은 수많은 사진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김정은의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김정은이 제거될 경우 ‘대타’로 등장할 수 있는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은에게 커다란 위협 요인이 된다.
1990년대 말까지도 김정남은 김정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다. 김정일은 세 번째 부인 고영희의 자식인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외부의 시선 때문에 2000년 초반까지 스위스에 숨겨두었지만 김정남은 1990년대 말 평양 고려호텔에서 총기 난사까지 벌이는 등 황태자의 지위를 누렸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에 밀입국했다가 적발돼 강제 추방되면서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고 알려졌다.
김정남은 2000년대 중반부터 마카오에 살면서 사실상 북한을 떠났다. 그러나 이때에도 고모인 김경희와 고모부인 장성택의 비호를 받으며 북한에서 연간 50만 달러 정도의 생계비를 지원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오스트리아에서 김정남 피살 시도설, 2009년 평양에서 김정남 일파에 대한 습격설이 나올 정도로 형제간의 권력 다툼은 심각했다.
김정남은 해외에 살면서 한국과도 비밀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남은 2005년부터 수년간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로 있던 유럽코리아재단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남북 소통 창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달 11일 당시 주고받은 일부 메일과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한국 정보기관이 김정남 망명 공작을 폈다는 사실이 국내 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김정남은 심각한 위협에 노출됐다. 당시 김정남은 망명에 동의했지만, 그가 부른 가격이 너무 높아 한국 정부가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김정남이 이 보도 공개 이후 위협을 느껴 한국 등지로 망명할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암살했을 가능성이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