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김정은의 치명적 惡手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청와대 전현직 경호실 간부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경호전문가 입장에서 공항에서 테러를 한다는 건 매우 이상하다. 인적이 없어야 ‘사고사’로 위장할 수 있고 증거를 남기지 않으며 꼬투리가 밟혀도 범행을 부인할 수 있다. 유사시 봉쇄 가능한 공항은 범행 후 탈출이 힘들다. 뭔가 급박하게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나 정황이 있지 않았을까.”

김정남, 귀국 망설였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 미국의 고위급 대북 정보 당국자들과 연구자들을 두루 취재한 결과 몇 가지 공통 의견을 추릴 수 있었다. 우선 작년까지 김정남이 국정원과 직간접적으로 소통을 해 오긴 했지만 구체적인 망명 요청을 해온 적은 없었다는 거였다. 그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베이징이었다. 생전에 그와 접촉했던 일본 언론인 고마 유지는 “그는 베이징 공안들 보호를 싫어하고 답답해했다. 망명하지 않고 해외에서 북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한국이나 미국도 ‘시달리며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변수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어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의 한 간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을 국내로 불러 오라는 김정은 지시에 따라 국가보위성이 지난달 20일경 김정남을 만났지만 ‘생각할 기회를 달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송환 지시를 받은 김정남의 망명을 우려해 암살했을 개연성도 있다.

김정남이 북한 내 반(反)김정은 세력과 연계된 대안세력일 것이란 추측은 “사정을 잘 모르는 얘기”라 말한 이들이 다수였다. AP통신 평양지국이 ‘북에선 김정남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고 했듯 그의 존재감은 거의 없으며 내부 정세 변화에 따른 권력승계 가능성도 없다. 이번 일이 북의 체제를 흔들 일도 아니라는 게 중론이었다. 김정은 체제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며 민중봉기로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거다.

살인 테러의 주체는 정찰총국 또는 보위성이 거론된다. 간첩 적발과 반역시도 방지가 주 임무인 보위성 수장 김원홍의 숙청도 김정남 망명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제거하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일 수 있으며 궁지에 몰린 보위성과 정찰총국이 응급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두 조직 중 하나가 엉성한 공항테러라는 무리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중국의 보호 외에 의지할 곳 없는 김정남 제거는 추종자를 포함해 지배세력 제거 차원인 장성택 제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쉬운 일일 것이다. 중국이 김정남을 레버리지(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지렛대)로 삼아 감싸는 상황에서 이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포악성 만천하에 드러나

사건의 전모는 곧 밝혀지겠지만 김정은의 국제적 입지는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 주재 한 서방언론사 간부는 “이번 일은 자신의 포악성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김정은 스스로 묘혈을 팠다”고 했다. 암살 시기도 좋지 않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에다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최악의 악수(惡手)를 둔 것이다.

집권 이후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 없는 김정은의 우물 안 개구리 식 맹동주의(盲動主義)는 절대고립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더 이상 북을 지원 묵인 방조할 명분이 없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반인도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전대미문의 살인광(狂)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김정남 피살#김정은#장성택#최악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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