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사건의 북한 관련 여부를 추적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평양 출신 리영 씨(58)를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올린 가운데 현지 언론은 한 동양인 남성을 사건 배후로 지목했다. 남성 용의자 4명 가운데 북한계로 알려진 사람과 동일인으로 보이는 이 동양인 남성이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의 동양인 남성은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여성 용의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번 사건을 계획적으로 꾸민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현지 중국어 매체 중국보에 따르면 이 남성이 소속된 일당은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여성 용의자들에게 인터넷에 올릴 장난 영상을 만든다는 생각을 주입시킨 뒤 범행을 저지르게 하고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보에 따르면 15일 체포된 베트남 국적의 여성 용의자 도안티흐엉(29)은 약 3개월 전 한 동양인 남성을 말레이시아에서 만났다. 이 남성은 흐엉을 한국으로 데리고 가 같이 쇼핑을 하고 베트남을 방문해 그녀의 가족과도 만나는 등 흐엉의 신임을 얻었다. 자신이 신뢰하게 된 남성이 인터넷에 올릴 만한 장난 패러디 영상을 찍자고 최근 제안했을 때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흐엉은 함께 영상의 주인공이 될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약 한 달 전 포섭된 인물이 16일 새벽 체포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라는 설명이다.
현지 언론 더스타는 두 여성 용의자와 문제의 일당이 범행 전날 공항에서 서로에게 액체를 뿌리며 즐기는 듯한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고 전했다. 콤비가 된 흐엉과 아이샤가 이 남성과 협력해 여러 차례 영상을 찍는 연습을 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범행 수법에 숙련됐다는 관측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체포된 여성 용의자 2명은 한목소리로 “김정남을 모른다. 장난인 줄 알았다”며 살해 행위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독극물 스프레이 분사가 아니라 장갑을 낀 손으로 독액을 뿌려 김정남을 살해했다고 보도한 중국보는 용의자 흐엉이 “(공범) 남성이 연고나 로션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를 장갑을 낀 내 손에 부어줬다.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즉시 해당 남성(김정남)에게 가서 뿌렸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17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간단히 체포된 것이) 의아하다”며 “혹독한 훈련을 받은 공작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17일 아이샤에 대해 “속아서 이 상황에 휘말린 피해자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정남의 사인 규명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화학국 법의학부는 15일 쿠알라룸푸르 병원에서 실시한 시신 부검에서 확보한 샘플을 16일 저녁 넘겨받았다며 “가능한 한 빨리 분석해 결과를 경찰에 전달하겠다”고 현지 베르다나 통신에 밝혔다. 현지 소식통은 “김정남의 시신을 본 경찰 관계자가 얼굴 등이 ‘아주 깨끗하다(very clean)’고 전했다”며 “흐엉이 헝겊에 독극물을 묻혀 손으로 김정남을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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