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상도동 YS 사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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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들이 아침 일찍 유력 정치인들 집을 찾아가 취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밥상은 정치인의 아내나 부엌살림을 맡은 아주머니가 차려낸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상도동 집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시래깃국과 찹쌀떡을 아침거리로 내놓으며 먹기 전에 꼭 기도를 드리자 했다고 한다. 원로 정치부 기자들 중에는 YS가 직접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고 아직도 기억하는 이가 제법 많다. 이렇게 쌓은 친밀함은 기자들까지 ‘상도동계’로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영화배우 조미령 씨가 살던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집으로 YS가 1969년 이사하면서 한국 정치사에 ‘상도동 시대’가 열렸다. 상도동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과 함께 민주화의 기지로 꼽혔다. YS는 3선 개헌을 추진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국회에서 공개 비난하다 집 앞에서 초산 테러를 당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가택 연금으로 발이 묶였고 23일간 목숨 건 단식을 단행하기도 했다. 연금 시절 좁은 안마당에서 얼마나 맴을 돌았는지 ‘트랙 자국’이 선명하더라는 목격담을 들은 적이 있다.

▷YS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상도동 집은 청와대로 떠나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선 뒤 첫 기자간담회 때는 “결코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청와대로 갈 때는 입던 옷가지를 챙기고 시래깃국을 잘 끓이던 아주머니를 데려간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퇴임 무렵 상도동 집이 너무 낡아 개축을 하긴 했으나 면적을 넓히지는 않았으니 약속은 지킨 셈이었다.

▷YS가 46년간 살았고 부인 손명순 여사가 지금도 살고 있는 상도동 사저가 매물로 나왔다. 차남 현철 씨는 사저를 팔아 YS 기념도서관의 악성 부채를 청산해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DJ는 YS를 “어려운 일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생전의 YS에게 압류니, 부채니 하는 복잡한 문제를 꺼내 든다면 등산화 끈을 묶다 말고 “치아라, 뭘 그리 고민하노”라며 단칼에 해결했을 것 같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김영삼#ys#상도동 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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