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사 “부검결과 부정할것” 말레이시아 “우리法 지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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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다급해진 北, 말레이와 외교갈등

“말레이시아 정부가 적대 세력과 공모해 뭔가 숨기려 하고 있다.”

17일 오후 11시 반경(현지 시간) 김정남의 시신이 안치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 앞.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주장했다. 굳은 표정으로 관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가에 서서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는 그는 무척 다급해 보였다. 그는 ‘적대 세력’ ‘정치 스캔들’이란 비외교적인 표현을 섞어 가며 말레이시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배후에서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식의 억지 주장도 폈다. 그는 13일 김정남 사망 이후 줄곧 언론을 피해 온 터라 이날 기자회견의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18일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더스타에 따르면 강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통해 “말레이시아 정부의 부검 결과를 총체적으로 부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사망자는 북한 외교여권을 소지한 북한 국민인데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의 허락과 참관 없이 부검을 강행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강 대사는 이 성명에서 북한의 반대에도 말레이시아가 김정남 부검을 강행한 배경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는 “남한 국민들은 보수 세력이 이번 사건(김정남 사망)을 활용해 박근혜 정권을 구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밀어붙이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말레이시아와 짜고 김정남 암살 배후가 북한이라고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교적 선전포고도 나왔다. 강 대사는 “이번 조치는 기초적인 국제법과 영사법을 묵살하며 우리 국민의 인권을 극도로 침해했다. 우린 적대 세력의 움직임에 강하게 대응해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에 우호적이던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주장이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아맛 자힛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16일만 해도 “북한의 시신 인도 요청은 수사 절차에 따라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시신 인도 요청에 호응하듯 말했다. 하지만 강 대사가 17일 밤 말레이시아의 부검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수브라마니암 사타시밤 보건장관은 18일 “북한이 말레이시아법을 따라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누르 라싯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경찰청장도 19일 기자회견에서 단호한 어조로 “(김정남) 시신은 아내와 딸, 아들 등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인도된다. 과학적 증거로 가족임이 증명돼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이 긴급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는 말레이시아 당국이 이번 살해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할 경우 국교가 단절될 수 있다는 긴박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1973년 6월 30일 북한과 수교한 말레이시아는 북한의 핵심 해외 기지 역할을 해 왔다. 무비자 정책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북한 주민이 비자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나라는 말레이시아가 거의 유일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말레이시아를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공작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말레이시아는 외교 거점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마약과 위폐 거래의 상당수를 떠맡았던 과거 노동당 작전부의 활동 지역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의 비공개 금융거래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은아 achim@donga.com·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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