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상당수가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법을 만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중소기업(출판사) 대표 A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최고경영자(CEO) 조찬 간담회’에서였다. A 대표의 발언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중견·중소기업들의 우려를 대변하고 있다. 대주주 권한을 제한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한 상법 개정안은 표적으로 하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중견·중소기업 회원사가 많은 한국무역협회가 16, 17일 전국 무역업계 대표 79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5%가 상법 개정안 통과를 반대했다. 31.8%는 상법 개정안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8.5%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의 47.0%, 중견기업의 77.3%, 대기업의 80.0%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유 부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경영 안정성을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제도를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한다면 국내에 거의 없다시피 한 경영권 방어제도도 같이 도입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에는 외부 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때 해당 기업의 기존 주주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기존 주주가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 필’과 대주주 지분에 의결권을 더 많이 부여해 지배권을 강화하는 ‘차등의결권’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재계에서는 이 때문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성벽도 쌓지 않은 채 적을 불러들이는 꼴”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입법부가) 법안의 파급 효과에 대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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