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하루 동안 중국과 말레이시아, 한국을 동시에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김정남 테러 이후 조성된 수세적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중국을 향해 “북한을 붕괴시키려 한다”며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통신은 이날 ‘너절한 처사, 유치한 셈법’이란 제목의 글에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의 시험발사 성공을 과시한 뒤 “그런데 유독 말끝마다 ‘친선적인 이웃’이라는 주변 나라에서는 우리의 이번 발사의 의의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법률적 근거도 없는 유엔 제재 결의를 구실로 인민생활 향상과 관련되는 대외무역도 완전히 막아치우는 비인도주의적인 조치들도 서슴없이 취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중국이란 국명만 거명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글이다.
통신은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상 우리 제도를 붕괴시키려는 적들의 책동과 다를 바 없다”며 “명색이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가 주대(줏대)도 없이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고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할 때 북한이 ‘일부 대국’이란 표현을 쓰며 에둘러 비판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이웃나라라고 지칭하며 비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중국이 최근 석탄 수입 전면중단 조치를 취한 것에 북한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조성될 대북 압박 국면에 중국마저 동참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협박 전술을 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비공개 방문설이 나돌던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3주 만에 나타난 날에 맞춰 중국을 비난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최 부위원장이 중국에서 수모를 당하고 왔을 가능성도 있다.
또 김정남 피살 이후 열흘 동안 침묵하던 북한은 이날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말레이시아를 겨냥해 “우리 공민이 말레이시아 땅에서 사망한 것만큼 그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있다”고 적반하장식 주장을 폈다. 김정남 부검 및 시신 이관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인륜도덕에도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며 “말레이시아의 앞으로의 태도를 보겠다”고 위협했다.
말레이시아도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맞대응했다. 모하멧 나즈리 압둘 아지즈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날 현지 매체인 말레이메일에 “이 나라(북한)는 예측 불가능한 나라고 어떤 불가능한 짓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인들은 그곳에 가지 말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추방하거나 북한 대사관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레이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은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이번 사건은 우리 공화국의 영상(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근혜 역도의 숨통을 열어주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보려는 데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심지어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태도는) 이미 예상했던 내용이고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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