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어느 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서울지검 특수부장과 검사를 비밀리에 만나 재벌 기업 비자금 수사를 지시한다. 평소 관계가 좋지 않은 여당 유력 대선후보의 비자금 창고를 미리 헐어내자는 정치적 계산에서다. 2015년 11월 개봉해 700여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검찰 사유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22일 기각됐다. 우 전 수석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는 상대가 인정하지 않는 한 입증이 쉽지 않다.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이 친정인 검찰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시민단체가 고발한 우 수석 사건을 4개월간 수사하는 시늉만 낸 뒤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했다. ‘우병우 사단’이 건재한 상황에서 부담 없이 수사할 검사는 많지 않았다.
▷검찰 내부의 ‘우병우 사단’을 30명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 중 절반은 ‘검찰의 별’로 불리는 검사장급 이상이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재직 당시 ‘인사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법무부 및 검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역대 민정수석이 30명에 이르지만 유독 우병우 사단이 맹위를 떨친 것은 검찰을 잘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때문이었다. 2015년 이후 검찰 인사에서 우 수석의 힘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훨씬 능가했다.
▷1999년 5월 말 터진 ‘옷 로비 사건’ 당시 검찰은 김태정 법무부 장관의 눈치를 보다가 수사 착수 열흘도 안 돼 ‘실패한 로비’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역풍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특검 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특검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서 나온 부메랑인 셈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페이스북에서 검사를 자기 인사를 6개월 전에 아는 광어족, 1개월 전에 아는 도다리족, 2, 3일 전에야 아는 잡어족으로 분류했다. 자신은 “잡어에도 못 낀 천민 검사였다”고 털어놨다. 광어를 꿈꾸며 권력의 칼이 되는 검사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