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국정 농단 사건 수사로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구속 기소) 등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들을 줄줄이 포토라인에 세웠다. 수사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해 총 90일 동안 특검은 많은 국민의 관심 속에 숱한 화제와 뒷이야기를 남겼다. 박수도 받고 비난도 받으며 검찰에 수사 바통을 넘기는 특검 수사 70일을 되돌아봤다.
○ 5시간 동안 조서 외운 우병우
만 20세에 사법시험 차석으로 ‘소년등과’를 한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 그의 두뇌는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도 빛을 발했다.
우 전 수석은 지난달 18일 오전 10시 특검에 출석해 같은 날 오후 11시 40분까지 13시간 40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우 전 수석이 특검 사무실을 나선 것은 이튿날 오전 4시 45분. 조사를 마친 뒤 바로 귀가하지 않고 5시간여 동안 자신의 조서를 꼼꼼하게 읽고 또 읽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다.
조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운 우 전 수석은 곧바로 자신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검사, 검찰 수사관들을 찾아가 ‘자필 진술서’를 받았다. 특검이 조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구속영장에 담을 혐의 사실을 반박하기 위한 제3자의 진술서를 준비한 것. 과거 검사 시절 치밀하고 집요한 수사로 정평이 났던 그는 같은 자세로 변론 준비를 했다. 결국 그는 법원에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냈다.
박 특검은 3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우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말한 뒤 “우병우, 내가 부장검사 때 30명 가까이 사망한 방화 사건을 맡아서 우병우 검사를 데리고 수사했는데 일은 참 잘해, 일은…”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이 어떤 변호인을 선택할지도 검찰과 특검 안팎의 관심이었다. 자신처럼 검찰 ‘특별수사통’ 출신을 선임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그는 검찰 출신이 아닌 법원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 2명을 선임했다. 특검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자신이 맡고,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법리 논쟁을 벌이는 데 변호사들을 투입한 것이다.
○ 영장 스트레스 술로 푼 검사들
특검에 파견된 검사 20명은 수사가 이어진 70일 내내 주말, 명절도 없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현직 대통령 비리 수사라는 부담 때문에 검찰 내 대표적 주당(酒黨)인 윤석열 수석파견검사(57)를 비롯한 대부분의 검사들은 수사를 하는 동안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금주령을 푸는 때가 있었다. 검사 자신이 담당했던 피의자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영장 발부 여부가 가려질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던 것. 온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수사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특검팀은 수사를 공식 종료한 지 이틀이 지난 2일 저녁 처음이자 마지막 전체 회식을 했다.
○ ‘패셔니스타’ 특검보…말수 줄인 박영수 특검
다양한 컬러의 겨울 코트를 바꿔 입어가며 머플러를 세련되게 소화해 ‘코트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규철 특검보. 패션잡지와 연예 매체에서까지 주목한 이 특검보의 패션은 그의 아내 작품이다. 이 특검보는 ‘옷을 잘 입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난 옷걸이다. 그냥 아내가 걸어주는 대로 입고 온다”고 답했다.
특검 출범 직후 언론에 많은 말을 쏟아냈던 박영수 특검은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언론 접촉을 극도로 자제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수사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특검 수사가 종료된 지난달 28일 밤 동아일보 기자는 박 특검의 집 앞에 찾아가 수사를 마친 소회를 물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염병하네’ 스타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청소근로자 임순애 씨(65)의 ‘염병하네’ 발언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채 여섯 차례나 특검의 출석 요구를 거부했던 최순실 씨는 1월 25일 체포영장 집행으로 특검 사무실에 끌려왔다.
호송차에서 내린 최 씨가 언론사 취재진 앞에서 갑자기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라고 소리쳤다. 최 씨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 순간, 기자들 뒤편에 서 있던 임 씨가 “염병하네”를 외쳤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임 씨의 목소리가 방송에 그대로 나갔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쏠렸다. 임 씨의 “염병하네” 발언을 못마땅하게 여긴 쪽에서는 임 씨가 특정 정당 당원이라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또 ‘임 씨가 해고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찌라시가 돌았다. 임 씨의 발언을 지지하는 쪽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찌라시였다.
정작 임 씨의 반응은 담담했다. “아휴, 저는 평범한 일반 국민이에요. 열심히 일하시는 특검팀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게 감사할 뿐입니다.”
○ ‘특검 도우미’ 장시호
국정 농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데에는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37·구속 기소)의 수사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장 씨는 특검에 최 씨의 태블릿PC를 제출했고, 최 씨와 박 대통령이 연락할 때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번호도 제보했다. 장 씨는 수사가 끝난 뒤 검사들에게 “두 달 동안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반면 최 씨는 특검에서 ‘진상 손님’으로 통했다. 출석 거부는 기본이고 간혹 조사를 받으러 특검 사무실에 와도 진술은 하지 않고 특검의 수사 상황을 정탐하기만 했다고 한다. 특히 조카 장 씨가 최 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증거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내게 덤터기를 씌우다니, 가만두지 않겠다”며 치를 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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