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심 성격의 탄핵심판 전형적 헌법재판과 달라
합리적 의심 배제는 아니지만 압도적 증거 우세 필요
역사적으로 탄핵심판은 법률 위반 중심으로 전개… 헌법 위반 적용은 더 신중해야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가 맡고 있으니 헌법재판이라는 주장은 틀리지는 않지만 동어반복으로 들린다. 탄핵심판은 전형적인 헌법재판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미국은 전형적인 헌법재판인 위헌법률심사를 우리의 헌재 기능을 하는 연방대법원이 맡지만 탄핵심판은 상원이 맡는다. 프랑스는 위헌법률심사는 헌법위원회가 맡지만 탄핵심판은 탄핵심판소가 맡는다.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한때 탄핵심판을 탄핵심판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관이 맡았다. 지금은 현행 헌법에 따라 헌재가 맡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이 태어나고 발전한 영미권에서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비슷한 외양을 띤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연방대법원장의 인도로 상원의원들이 탄핵 사유별로 유무죄를 결정한다. 그 구조가 판사의 인도로 배심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사실심 형사재판과 유사하다. 위헌법률심사 같은 전형적인 헌법재판은 일종의 법률심이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인 재판관들끼리 한다. 탄핵심판은 사실심이니까 비법률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심까지도 재판관이 하는 대륙법 국가이다 보니 그 점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가 증인 소환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걸 보고 놀랐다. 오랫동안 행방을 감췄다 법원 재판에 나타난 고영태 씨에게 헌재가 출석요구서를 직접 전달하고도 소환에 실패한 데서는 헌재가 탄핵심판에 필요한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헌법재판관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헌재가 법률심에 적합하게 돼 있지, 사실심에 적합하게 돼 있지 않은 탓일 것이다.
물론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에 가까울 뿐이지 형사재판은 아니다. 영미에서 탄핵심판에는 형사재판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대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였던 찰스 블랙은 이 분야의 영향력 있는 저서 ‘탄핵 핸드북(Impeachment: A Handbook)’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보다는 약하지만, 민사재판의 ‘증거 우세’보다는 훨씬 엄격한 ‘압도적 증거 우세(overwhelming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의 기준을 제시한다. 51 대 49 정도의 증거 우세로는 부족하고 80 대 20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은 상원의 탄핵 관련 규칙에 명시적인 증거 기준이 없다. 블랙 교수의 기준도 법학적 제안일 뿐이다. 상원의원 각자가 실제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헌재법에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한다는 명시적 규정을 갖고 있다. 또 대통령 탄핵은 형사상 소추가 불가능한 대통령을 일단 자리에서 쫓아내기 위한 긴급조치적 성격을 띤다. 우리나라에서도 탄핵심판은 준(準)형사재판의 성격을 갖는다.
헌법 위반은 법률 위반과 함께 우리 헌법이 규정한 탄핵 사유다. 이 점이 탄핵심판을 헌법재판이라고 하는 근거라면 근거다.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헌법 위반을 위주로 소추했고 헌재도 거기에 맞춰 심판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헌법 위반 위주의 심판에는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성문헌법이 있는 나라 중에서 헌법 위반으로 탄핵한 사례를 아직 보지 못했다. 남이 가보지 못한 첫걸음을 내디디려 할 때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
탄핵 결정에는 불복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탄핵심판은 단심(單審)이다. 하지만 법률 위반 부분은 박 대통령이 일반인으로 돌아가 형사 소추를 받고 법원에서 다툴 여지가 열려 있다. 물론 법원 판결이 헌재 결정과 다르게 나온다고 탄핵 결정이 번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회적으로 한 번 더 심판을 받아볼 길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법 위반 부분은 그런 길마저 차단된다. 헌법 위반은 법원이 아니라 헌재가 최종 판단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어쩌면 헌재 역사상 가장 어려운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헌법재판관들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감히 헌법재판관들에게 인성에 관한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헌재는 자기 임무의 범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최고기구다. 스스로 정하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헌재에 제도적인 차원의 겸손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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