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유튜브의 김한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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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위왕(魏王) 조조의 아들들 중에는 조비와 조식이 뛰어났다. 조조는 두 아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조비를 세자로 택한다. 조비는 왕이 되자 동생을 엄격히 감시한다. 멀리 변방으로 보내고 임지도 계속 옮기게 했다. 결국 조식은 울분으로 병을 얻어 마흔 살에 숨지고 만다. 역사에서는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표적이 되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들이 많다. 아버지(김정남)의 독살을 경험한 아들 김한솔도 삼촌 김정은의 살해 명령이 곧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떨었을 것이다.

▷김한솔로 추정되는 인물이 8일 유튜브에 등장했다. 해외 도피를 돕는 탈북자들 단체라는 ‘천리마 민방위(Cheollima Civil Defense)’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40초 영상에서 “내가 김한솔이다. 북한에서 왔다. 어머니 누이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김한솔이 직접 (영상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씨 일가 4대 직계손인 그가 “김씨 가문 일원”이라 당당히 밝힌 것도 ‘백두혈통’임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다.

▷천리마 민방위는 이번 피신 과정에서 네덜란드 중국 미국 및 익명의 한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통일부는 이런 단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지만 실존한다면 상당 기간 국제 네트워크를 갖고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가상의 단체라면 김한솔이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한솔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는 말에서는 삼촌에 대한 분노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여권까지 보여준 것도 북한 국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는 2012년 외신 인터뷰에서 삼촌 김정은을 ‘독재자’라 표현했고 “언젠가 북으로 돌아가 주민들 삶을 낫게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숨어 살아도 좋을 텐데 굳이 얼굴을 공개하고 메시지까지 보낸 것은 북한 내부 변화를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 아니었을까. 김한솔이 건재하길 바란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김정남#김한솔#김한솔 유튜브#천리마 민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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