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끝난 지 약 2시간 반 뒤인 10일 오후 2시경.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과 대통령수석비서관 전원이 청와대 관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한 시간가량 탄핵 인용에 따른 사저 복귀 방안, 대국민 메시지 등 조치를 보고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내내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침통한 수석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등 대화가 제대로 오가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오늘(10일)은 관저에 머물 것”이라며 “따로 메시지나 입장 발표는 없다”고 했을 뿐 온종일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 박 대통령, 기각 확신했던 듯
앞서 이날 오전 11시 박 전 대통령은 TV로 헌재 선고를 지켜봤다. 8 대 0으로 탄핵이 인용되자 몇몇 참모에게 전화해 사실관계를 되묻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줄곧 탄핵 기각을 확신했던 것 같다. 참모들조차 탄핵 인용 가능성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느냐”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오후 3시 반경 청와대 관계자는 “서울 삼성동 사저 상황 때문에 이동할 수 없다. 오늘(10일)은 관저에 머물 것”이라고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주말 동안 관저에 머물다가 삼성동 사저가 수리되는 대로 청와대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르면 12일, 늦으면 13일경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헌재 결정 존중 메시지도 없어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에 대한 간단한 입장조차도 밝히지 않았다.
당초 청와대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인용과 기각, 각각에 대비한 두 가지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아무런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도 박 전 대통령이 침묵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메시지조차 내지 않은 데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헌법재판소 최후진술 의견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며 “박 전 대통령이 말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아 이를 언급할 여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헌재에 제출한 최후진술 의견서에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 소중한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육성으로 메시지를 전한 것은 1월 25일 한 인터넷방송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다. 지난달 27일 헌재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는 이동흡 변호사가 최후진술 의견서를 대독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한 달 이상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데다 탄핵 인용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은 (박 전 대통령이) 조용히 계시고 싶은 것 같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 혼자 머물면서 향후 거취 등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를 떠나기 전 파면 결정에 대한 승복 및 국민통합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청와대 참모진 거취는
앞서 한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비서동인 위민관에 모여 TV를 통해 탄핵 심판을 지켜봤다. 청와대 직원들도 각 사무실에서 숨을 죽인 채 TV를 응시했다. 이때만 해도 청와대 직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추천했던 서기석, 조용호 헌법재판관의 표정까지 살피면서 기각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다. 그러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언급하며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자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결정하자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일부 직원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한 뒤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이 청와대를 찾아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시도했으나 30분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초유의 국정 공백을 우려해 당분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 수석들은 대통령 파면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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