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私邸) 앞에는 어제 아침부터 지지자들이 찾아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이른바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도 출범했다. 윤상현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 인사들도 다녀갔다. 서청원 최경환 등 친박 의원 10여 명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총괄·정무·법률·수행 등 역할 분담까지 마쳤다.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탄핵에 사실상 불복하는 메시지를 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친박 인사들이 그 주변에 재결집하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은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을 위문하겠다는 인간적 정리까지 탓할 수는 없다. 파면당한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 외에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만큼 보좌진 구성도 자발적 봉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선과 ‘문고리 3인방’을 막아 서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는커녕 탄핵당하게 만든 친박은 ‘폐족(廢族·벼슬할 수 없는 족속) 선언’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얼마 남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 기대 끝까지 정치생명을 연명하겠다는 태도는 혐오를 자아낼 뿐이다
박 전 대통령도 친박 보좌그룹 구성을 보고받았을 테지만 이를 말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사저를 중심으로 한 정치인과 지지 세력의 조직화는 자칫 ‘사저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동을 드나드는 이들 중 일부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불복을 선동해온 인물들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빌려 직간접적으로 불복의 정치 메시지를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치사엔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대표되는 사저 정치가 있었다. 상도동계·동교동계의 탄생은 군사정권 시절 가택연금 투옥 등 박해를 받았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비공식 정치무대를 열어주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두 대통령 재직 당시는 물론이고 퇴임 이후까지 주군 모시듯 싸고돌며 한국정치를 혼탁하게 했던 명암을 남겼다. 이런 구시대적 ‘골목길 정치’가 되풀이된다면 한국 정치의 수준이 우스워진다.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헌재의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친박이 탄핵 이후까지 박 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선 안 된다. 박 전 대통령도 당장은 탄핵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지지자들에게 의지하고 싶겠지만, 무엇이 훗날 역사에 대통령다웠던 전직으로 기록되는 길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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