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머리카락을 길게 말아 올려 크게 부풀린 것을 ‘다리’라고 한다. 머리숱이 많으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발을 얹었다. 조선시대 신윤복의 미인도에는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싶게 무거운 ‘다리’를 이고 있는 여인들이 나온다. ‘다리’는 처음엔 소박했지만 갈수록 사치스럽게 변했다. 번듯한 ‘다리’를 장만하려면 집과 땅을 팔아야 한다는 개탄이 영조실록에 나온다. 영조는 몇 차례 ‘다리 금지령’까지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서양에서는 17세기 프랑스 왕 루이 13세가 가발을 유행시켰다고 한다. 루이 13세가 대머리를 감추려고 썼던 가발을 귀족들이 따라하면서 영국 법정에까지 퍼졌다. 영국 법조인들은 요즘 파마머리같이 둘둘 말린 하얀 가발을 썼다. 가발 길이는 권위와 비례해 어깨까지 내려오는 것도 있었다. 이런 가발을 만들려면 적지 않은 헤어롤을 썼을 듯하다. 우리 판사들은 1966년부터 법모(法帽)를 벗고 법복만 갖춰 입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헤어롤 2개를 달고 출근했던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어제 퇴임했다. 앞으로 이 전 재판관에게는 ‘헤어롤’이 연관 검색어로 오랫동안 따라다닐 것 같다. 가수 윤종신은 “이 아름다운 실수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헤어롤은 직장과 가사로 정신없이 바쁜 ‘일하는 여성’의 상징처럼 됐다. 그럴수록 올림머리를 하는 데 걸렸던 시간을 두고 논란까지 벌어졌던 박 전 대통령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 전 재판관은 6년 전 인사청문회 때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그는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 동안 짧게 생각하고 소신을 밝히기보다 ‘소신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낫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재판을 하려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불과 3개월의 짧은 심판 기간에 논의를 주도하느라 고뇌가 더 깊었을 것이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퇴임사로 짐작만 할 뿐이다. 평소 생각한 대로 ‘청소년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제2의 인생을 꽃피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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