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에서 살아온 전두환 대통령이 내린 특명이다. 북한의 테러가 분명했지만 버마 당국에 체포된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성북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를 다닌다’는 어설픈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니 버마 측에선 한국 내 반정부 세력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국내에서조차 전두환의 자작극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전 대통령으로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명 1983 ‘北 자복하게 하라’
가뜩이나 사전에 테러 첩보도 입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서도 다급해진 상황이었다. 안기부는 관리하고 있던 전향간첩을 이용해 북한에 이런 내용을 타전하게 했다. ‘곧 주민등록 교체 예정. 신분증 위조 등 대처 위해 귀환 요망.’
북한은 이 미끼를 바로 물었다. 접선 일자에 북한 공작선이 부산 다대포 해안에 도착했고, 공작원 2명은 매복해 있던 특수부대 체포조에 생포됐다. 이들은 안기부 심문 뒤 전향했고 아웅산 테러가 북한 소행이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지도원으로부터 공작원 2명이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도원은 ‘이들의 공작이 서투르고 엉망이었다. 버마군에 생포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혁명성 없이 자폭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북한 공작원들의 자복(自服)이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을까.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버마 당국에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참극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라종일의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국가정보원 차장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저자가 당시 붙잡힌 북한 공작원들에게 들은 증언이라고 한다. 이미 30년도 지난 시절 얘기지만 당시 우리 정보기관의 공작은 신속하고 효과적이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모든 증거가 북한을 가리키는데도 북한은 여전히 오리발이다. 외려 평양의 말레이시아 외교관들을 볼모로 삼아 버티고 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숨은 테러범 2명까지 빠져나가면 법의 심판에 넘겨진 것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둘뿐이다. 북한을 단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답답한 상황에서 그나마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무사하다는 소식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며칠 전 살해됐다’라면서도 설핏 웃음기도 보인 40초짜리 동영상이 얼마 전 공개됐다. 북한의 다음 타깃이 될 게 뻔한 김한솔이 어딘가로 피신해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김한솔은 지킬 수 있을까
이 동영상이 나온 직후 국정원은 “김한솔이 맞다”고 확인했다. 다만 동영상을 올린 주체인 ‘천리마민방위’의 실체가 무엇인지, 현재 체류지가 어딘지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김한솔의 피신에 국정원의 역할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나는 믿고 싶다. 나아가 앞으로 김한솔의 안전도 국정원이 당연히 책임질 것이라고. 또 한 가지. 김한솔은 동영상에서 특별히 이름까지 거론하며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정은을 세워야 한다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것은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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