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14시간 5분간 강도 높게 조사했다.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2시간 45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조사를 받은 시간은 11시간 20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 종료 후 22일 새벽까지 신문조서를 검토한 뒤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고 귀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를 받는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조사 방식 문제로 다투는 대신 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며 공소 제기를 준비하는 ‘실리 추구’ 전략으로 맞섰다. 이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있기 때문에 애써 자백을 받기 위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검찰, 깍듯이 예우하며 진술 유도
서울중앙지검 노승권 1차장검사는 이날 오전 9시 25분 박 전 대통령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진상 규명이 잘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성실히 잘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이날 조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또는 “대통령께서”라고 존대하며 예의를 갖췄다. 하지만 조서에는 법과 관행에 따라 ‘피의자’로 기재했다. 박 전 대통령도 조사를 받으며 두 부장검사에게 “검사님” 등 존칭을 썼다.
검찰은 이날 편면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조사실을 들여다보거나, 조사실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 상황을 모니터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는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할 때, 이인규 중수부장 등 대검 간부들이 모니터링룸과 사무실에서 CCTV로 조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수사팀에 조언을 한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14시간 넘게 조사를 받는 동안 2, 3시간마다 15분씩 휴식시간을 줬다. 검찰은 조사실 구석에 소파 2개를 들여놨고, 옆문으로 연결되는 휴게실에 응급용 침대까지 구비했다. 박 대통령은 조사실 밖에 있는 일반 화장실을 이용했다.
검찰은 진술을 기록하는 보조검사 중 일부를 여검사로 배치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도록 배려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답변을 거부하거나 역정을 내는 등 별다른 돌발 상황 없이 조사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 박 전 대통령, 차분한 말투로 혐의 부인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조사에서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를 담담한 태도와 차분한 말투로 모두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비리에 대해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끊어내기’ 전략을 구사했다. 최 씨가 삼성 측에서 딸 정유라 씨(21)의 승마훈련 지원비로 거액을 받은 데 대해서는 “그런 돈거래 자체를 몰랐고, 최 씨가 돈을 받았다고 해도 나와는 경제적으로 무관하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 측근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선 ‘책임 떠밀기’식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선 “최 씨나 안 전 수석에게 재단 설립을 지시한 적이 없다”며 “기업들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문화·체육 관련 공익사업이나 투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원론적인 부탁을 했을 뿐 재단 출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재단 출연이 문제가 되자 청와대 내부에서 ‘재단 설립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한 것’으로 말을 맞췄다”는 안 전 수석의 진술, “박 전 대통령이 ‘(삼성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는 최원영 전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59)의 진술 등을 들이밀며 박 전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나 증거들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 전 대통령, 초밥과 죽으로 식사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5분부터 14시간 넘게 조사를 받는 동안 점심과 저녁 식사를 했다. 점심은 김밥과 유부초밥 도시락, 저녁은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주문한 전복죽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시간이 많이 걸려 다들 고생할 텐데 (조사가 끝나기 전) 먼저 돌아가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9시 35분 조사를 시작한 한 부장검사는 오후 8시 35분 조사를 마쳤고, 바통을 넘겨받은 이 부장검사가 오후 8시 40분부터 11시 40분까지 3시간 동안 조사를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의 옆자리에는 유영하 변호사(55)와 정장현 변호사(56)가 교대로 앉아 조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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