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본 생생한 한국정치 헌법재판소라는 정치적 지혜로 국가적 파멸 막아
한국 민주주의 한 단계 성숙… 이제 운동권 에너지 자제하고 실용주의로 中, 日 문제 대해야
이 정도로 생생한 한국 정치를 관찰하는 것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년 만의 일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때와는 달리 1987년 ‘운동권’을 형성했던 이들은 대학생이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신중산층이었다.
이번 촛불시위를 조직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 밀실 정치를 비판했던 것도 각종 시민운동 단체와 일반 시민이었다. 30년 전에는 군인들이 주도한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며 16년 만에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현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지만 이번에는 목표가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이 얼마나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재벌과 유착했는지는 앞으로 검찰에 의해 분명해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시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밝혀진 밀실 정치의 실태에 경악해 단번에 운동권으로 기울어졌다. 시민들에게 비판받은 것은 ‘제도권’의 전통 정치였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충성 경쟁, 그 대가로 얻는 자의적 인사(특히 검찰 경찰 국세청 국가정보원의 고위직 임명), 권력과 재벌의 유착 등 제도권의 부정부패는 거의 모두가 지도자 개인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민은 이런 부패에 민주주의적으로 대처했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인지 일본인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중용하고, 재벌과 유착한 것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토요일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을 모으는 운동권의 에너지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한국 정치가 제도권과 운동권으로 양분돼 각각 다른 행동원리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권의 지도자 중심 정치와는 달리, 운동권의 정치는 자신이 믿는 사회정의를 행동원리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원리주의적이다.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이번에 운동권 정치가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성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의 장기 집권뿐 아니라 계엄령, 긴급조치권 발동, 쿠데타 위험 등 국가적 비상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1987년 헌법은 헌법재판소라는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만약 헌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번 사태가 무사히 수습됐을까. 3분의 2가 넘는 국회의원의 사직, 정부에 대한 불복종 운동, 직장에서의 파업, 좌우 세력의 가두 충돌 등에 의해 제도권 정치는 마비되고 계엄령이 발동됐을지도 모른다.
헌재라는 민주화 시대의 정치적 지혜에 의해, 그런 국가적 파멸을 피할 수 있었으니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의 후퇴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전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난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에 따른 정치 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현재 많은 한국인이 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바꾸거나,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등 현행 헌법을 개정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필요하지만 본질적이지 않고, 만능도 아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이 제도권의 전통 정치와 정치 문화에 있다면 헌법 개정에 의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커녕 힘을 얻은 운동권의 원리주의와 교조주의가 거꾸로 한국 사회나 국제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모른다.
5월 9일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남북 분단뿐 아니라 한국이 안고 있는 많은 사회적 갈등(좌우 이념대립, 동서 지역대립, 소득 격차, 세대 갈등 등)을 조금이라도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실용주의일 것이다.
또 남북 관계는 별도로 생각하더라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긴장된 한중 관계,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재연된 한일 관계에도 원리주의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차기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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