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가 어제 ‘대통령직 인수 등에 관한 법’(인수위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개정안은 보궐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45일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한 현행법상 5월 9일 조기 대통령 선거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적용이 되지 않아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위헌 논란에 무산됐다. 결국 정 의장과 4당 원내대표는 현행 인수위법을 폭넓게 해석해 대통령 임기 시작 후 30일간 인수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인수위도 없이 새 정부가 들어서 혼돈을 겪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인수위는 대통령 당선인이 설치하는 것인 만큼 위헌 논란을 배제할 수 없다. 현행 인수위법은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 시작 전에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게 하기 위해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으로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헌법 86, 87조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 헌법과 충돌하지 않으려면 새 국무총리 후보자가 추천한 국무위원 후보자의 임명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제청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4당 체제에서 인수위법 개정은 실패했다. 협치는커녕 최소한의 운용의 묘도 발휘하지 못하는 국회에서 차기 정부의 새 총리 인준이 순조로울지 걱정스럽다. 장관들의 조각(組閣)까지 어려워져 새 대통령 임기 초 소중한 시간을 허송세월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국정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대선 유력 주자들이 서둘러 섀도캐비닛(예비내각)을 발표해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미 바른정당은 유승민 후보를 확정했고 자유한국당이 31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다음 달 3일과 4일에 대선 후보를 확정한다. 각 당은 후보가 확정되는 대로 세부적인 정책 공약과 함께 총리를 포함해 핵심 부처에 대한 섀도캐비닛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어떤 후보와 주요 참모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지 판단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섀도캐비닛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예비내각 명단에서 빠지는 사람들의 반발로 캠프에서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대선후보 캠프의 문제일 뿐이다. 공당(公黨)이라면 당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선 대선주자들이 미리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재무장관 등 핵심 각료를 중심으로 섀도캐비닛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대통령 탄핵사태로 한국은 외교 안보 불안 속에 경제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총리와 외교 국방 경제 사령탑은 미리 발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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