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의 워치콘 X]새 정부와 사드의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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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청명절 연휴기간이었는데도 항공편 좌석은 절반도 차지 않아 한산했다. 교민 사회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코리아타운의 네온사인 간판 ‘왕징한궈청(望京韓國城)’에선 글자 ‘韓’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타깃이 될까 봐 떼어낸 것이라고 했다. 식당에 한글 메뉴가 사라진 지도 꽤 됐다고 한다.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교민들이 겪은 심리적 압박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새 대통령 지시 1호는 사드?

주중 한국대사관은 속수무책이다. 양국 간 외교채널은 사실상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온갖 핑계를 대며 과장급 이상 고위급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김장수 대사 명의로 롯데 영업제한을 풀어 달라는 서한을 중국 외교부와 상무부, 공안에 보냈지만 중국 측은 ‘영업제한 연장’ 통보로 응답했다. 그나마 서한 접수 자체를 거부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푸념까지 나오는 판이다.

앞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드 한국 배치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초 사드 발사대 2대가 전격 반입됐고, 레이더까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방부는 “사드 반대가 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내놓았다. 성주 롯데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고 부지공사가 시작되면 한중 갈등은 최고조에 달할지도 모른다.

5·9대선 이튿날 아침 투표 결과가 확정되자마자 출범하는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양강(兩强) 구도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누가 되든 정권 교체다. 문 후보와 민주당은 사드 배치의 재검토와 함께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안 후보는 사드 배치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그가 속한 국민의당 당론은 배치 반대다.

군 안팎에선 새 정부가 출범하면 사드 배치 절차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내놓을 첫 조치가 사드 배치 중단까진 아니겠지만 배치 절차의 동결이나 최소한 속도 조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한다. “절차를 들여다보자”며 재점검 지시가 내려지면 배치 시기는 연기될 수밖에 없다. 더욱 큰 걱정은 대외적 파장이다. 당장 중국은 반색하겠지만 미국은 어떨까.

두테르테식 ‘총명한 외교’?

남중국해에 스카버러라는 환초 섬이 있다.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고 필리핀 주둔 미군이 사격훈련을 했던 곳이다. 중국은 2012년 이 섬을 사실상 점령하고 실효지배에 들어갔다.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까지 막아버렸다. 이에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미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동맹관계를 강화했다.

그런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필리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두테르테는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욕설까지 퍼붓더니 중국엔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중국은 “총명한 전환”이라며 치켜세웠다. 두테르테의 현란한 외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돌연 필리핀이 지배하는 남중국해 모든 섬에 군을 배치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국내 정치적 압박에 따른 빈말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중국#사드#두테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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