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선(民選) 지방의회가 수립된 지 26년이 됐다. 실질적 주민자치를 이뤘다고 보기에 현재 지방의회의 모습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방분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중앙정부 중심의 체제로는 지방자치단체의 복잡다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다. 중앙과 지방이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지방분권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책은 무엇인지 3회 시리즈로 살펴본다. 》
지난해 4월부터 서울시내 지하철역 출입구 1662곳의 반경 10m 이내는 금연구역이 됐다. 서울시의회가 제정한 ‘서울특별시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가 단속의 근거다. 국민건강증진법이 금연구역 지정을 규정하고는 있지만 서울시 조례이기에 전국에서 실시되지는 않는다. 간접흡연을 놓고 비흡연자와 흡연자 사이의 갈등이 잠복해 있지만 법으로는 ‘속수무책’이던 공간에 조례가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현재 서울시의회 법제관리팀장은 “관련법을 만들거나 고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조례를 통하면 사회적 어젠다를 바로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빠른 정책 시행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법>법률>명령(시행령+시행규칙)>조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조례가 차지하는 위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법이라 할 조례는 명령보다도 하위에 있다. 그만큼 제정과 실행에 제약이 따른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정책을 받아 집행만 한다면 지방분권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바로 서려면 시의적절한 조례의 제·개정이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전국으로 퍼진 생활임금조례
‘지하철역 출입구 10m 이내 금연’처럼 상위법의 ‘속박’을 뚫고 싹을 틔우는 조례는 적지 않다. 조례가 상위법에 종속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2013년 경기 부천시와 서울 성북구, 노원구에서 시작해 서울시, 경기도 같은 광역단체를 포함해 전국 지자체 86곳이 도입한 생활임금제가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이 매년 8월 결정될 즈음 노·사·정 모두가 몸살을 앓는다. ‘더 올려야 한다’는 노(勞)와 ‘이걸로 충분하다’는 사(社), 그 사이에서 정(政)은 진땀을 뺀다. 이 틈새를 비집고 나온 것이 지자체의 생활임금조례였다.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한다면 생활임금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기준이다. 조례가 있는 지자체마다 각자 재정 형편에 맞춰 통상 최저임금의 1.2∼1.4배 수준으로 정한다.
서울시 생활임금은 정부의 최저임금 6470원보다 1727원 더 많은 시간당 8197원이다. 생활임금 적용 대상은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직접고용인력 및 공공계약을 체결한 하도급 소속 근로자 등이다. 하지만 대상은 공공분야 내에서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1월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킨 부산 중구는 비정규직 200명에게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선언적 의미로만 평가받던 조례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지난해 5월 서울시의회는 ‘경제민주화 기본조례안’을 공포했다. ‘조례가 너무 추상적이다’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 조례에 근거해 관련 정책을 추진하자 시민의 호응은 뜨겁다. 불공정거래 피해의 사각지대에 있던 소상공인, 불법 대부업에 시달리는 금융취약계층,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고민과 민원을 호소할 수 있는 서울시 ‘눈물그만센터’를 통해 실질적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김광수 의원(도봉)을 비롯한 서울시 시의원 15명은 지난해 10월 ‘서울특별시 지방공무원 복무조례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퇴근 후 업무 카카오톡 방지법’이다. 업무 시간 이후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업무 지시를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시도다. 서울시의회 안팎에서는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관련 법률로 확산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 자치입법권의 한계는 어디인가
서울시 김구현 시의원(성북3)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은 도시공원과 어린이놀이터를 ‘음주(飮酒) 청정지역’으로 지정하자는 취지다. 이곳에서 술을 먹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도록 했다. 통과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시의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는 여전히 처리를 못하고 있다. 주류협회의 거센 반대가 있긴 했지만 그들이 내세운 “국민건강증진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조례에 관한 헌법 117조와 지방자치법 22조는 각각 ‘조례는 법령(법률+명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할 수 있으며’,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음주 청정지역’ 조례안은 법령의 범위 밖에서 법률의 위임도 없는 조례라는 주장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해 조례 제·개정의 제약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례는 상위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전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지방의회의 입법권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방법으로 현재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돼 있는 지방자치법 22조를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법령의 범위 안에서’는 ‘법령의 위임이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좁게 해석된다. 반면 ‘위반하지 않는 한도’로 바꾸면 법률의 위임이나 근거가 없더라도 지방의회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등은 지난해 8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헌법 법률 조례로 이어지는 큰 틀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면서도 “조례를 만들고 싶어도 상위 법령이 모호해 만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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