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 기념 음악회 예행 연습 6일 북한 평양 능라도경기장 인근 광장에서 태양절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음악회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선생이 문재인 선생을 많이 따라잡은 것 같던데…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는 겁니까?”
버스는 평양 한복판 여명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곳곳에 새로 지어 올리는 고층 건물들이 보였다. 여명거리는 김일성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영흥사거리까지 동서로 난 도로에 새로 건설 중인 시가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김일성의 생일인 올해 태양절(15일)까지 여명거리 건설을 마치라고 지시했었다. ‘만리마 속도전’ ‘결사옹위’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버스 안의 북한 관계자는 “여명거리에 짓고 있는 건물들은 7시간에 한 층씩 올라간다”며 만리마 속도전을 홍보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 건물들엔 모두 노동자들이 살고 있습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 취재를 위해 3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한국 기자들을 맞은 건 ‘연락관’이라고 불리는 40, 50대의 중년 7, 8명이었다. 이들은 한국 기자들이 평양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숙소인 양각도호텔에 머물며 함께 지냈다.
평양의 신부 6일 평양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능라도경기장을 둘러보고 있는 북한의 신혼부부.
평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들이 이제 네 살인데 언제 키워 장가 보냅네까?”라는 등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고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는 속에서 한국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통령 관련 여론조사 이야기에서부터 “세월호가 이제는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박근혜가 세월호 사건 때 주사를 맞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남쪽에서 부끄러운 일(탄핵)이 있었는데 촛불시위에는 나가 보셨습니까?”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걸 보면 남측 대통령도 누가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렸다.
한국 정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소속이라고 밝혔다. 북한을 방문하는 한국 측 인사들을 안내하고 민간 교류에 가담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아침에 한국 신문을 정리하고 뉴스들을 살핀다”고 했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의 약자인 ‘탄기국’이라는 단어도 익숙하게 입에 올렸다.
3일부터 8일까지 한국 기자들이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렇듯 한국 정세에 관한 것이었다. 이 기간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고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이 고조되면서 한국에서는 4월 위기설이 퍼지고 있었다.
숙소인 47층의 양각도호텔 방에서는 중국중앙(CC)TV와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국인들이 드나드는 로비에서는 오로지 조선중앙TV만 볼 수 있었다. 조선중앙TV에서는 끊임없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모란봉 악단의 체제 찬양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승리를 거두고 북한 국가가 연주됐던 5일. 북한은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호텔 방에서 틀어 놓은 알자지라 방송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가 방영됐다. 그러나 연락관들은 이날 미사일 발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절 발언하지 않았다.
이어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미국이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국제뉴스에 밝은 연락관들이었지만 이 뉴스에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했지만 그 속에는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빗자루 든 학생들 5일 봄비가 내리는 평양 거리에서 남녀 학생들이 빗자루를 든 채 걸어가고 있다. 평양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치 선동 구호와 달리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표정이 천진난만해 보인다.
평양에는 광고판이 없는 대신 어디서든 ‘온 나라와 전민이 김일성·김정일 주의화하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가 많았다.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했고, 김일성 초상화를 찍을 때 나무에 살짝 가리자 “기왕이면 제대로 찍으라”며 다시 찍으라고 했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리돼 있었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30∼40년은 된 듯한 낡은 아파트가 많았고 큰 건물에도 균열이 있었다. 이런 거리를 촬영할 때면 “선생,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라며 제지했다. 밤이면 어두운 가운데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만 빛났다. 평양에서는 물건을 사고 잔돈을 받기 힘들어 껌으로 대신 받는 경우도 있었고 북한에서 쓰는 일종의 신용카드인 ‘나래 카드’는 한밤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페이스북, 구글, 뉴욕타임스,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접속이 자유로웠지만 한국의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는 메인 화면만 뜨고 이후 화면으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별도의 아이디(ID)를 발급받아야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통제했다.
평양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는 흔들리고 있었다. 평양에서 순안공항으로 가는 길은 도로 정비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서울과 전주 거리와 비슷한 200km 남짓. 그러나 중국을 거쳐 평양에 들어갈 때까지는 지구 반대편 남미까지 가고도 남을 30시간이 걸렸다. 11시 20분 예정이던 평양 출발 비행시간은 별다른 설명 없이 오후 4시 30분으로 연기됐다. 비행기 사정인 듯했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언제쯤 좁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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