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1987년 발간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돼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이 나게 했다”고 적었다.
욕설 넘쳐난 트럼프 막말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의 미디어 전략을 후회 없이 써먹었다. 언론들은 조용한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의 거친 입에 주목했다. 까칠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겐 면전에서 욕을 퍼붓고, 여성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유세 때마다 ‘fu**’이라는 욕설을 입에 달고 다녔다. 대선 후보 TV토론에선 클린턴에게 “대통령이 되면 감옥으로 보내버리겠다”고 대놓고 협박까지 했다.
‘무명(無名)보다는 악명(惡名)이 낫다’는 트럼프는 언론의 비판이나 대중의 비난에는 관심도 없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권 8년 동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진보의 가치에 질리고, 일자리마저 잃은 ‘앵그리 화이트’들은 브레이크 없는 트럼프의 거침없는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에게 품격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톡톡 튀는 그의 말끝에는 상대를 가차 없이 할퀴는 가시가 돋쳐 있다. 상대를 공격하고 철저히 계산됐다는 점은 트럼프와 비슷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말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 트럼프가 쓰는 용어엔 ‘강간’ ‘성폭행범’ ‘여성의 성기(pu***)’ 등 성적인 단어가 넘치지만 홍준표의 말에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와 ‘팩트(사실)’가 담겨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한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는 말엔 보수조차도 눈살을 찌푸렸다. 사자(死者)를 들먹이는 게 터부인 줄 알면서도 홍준표는 금기(禁忌)를 깼다. 문재인에겐 기분 나쁜 고약한 말이지만 핵심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비서실장으로서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보수 표를 넘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겐 ‘얼치기 좌파’라는 라벨을 붙이고, 노회한 박지원이 ‘상왕(上王)’으로 군림하고 있다며 ‘허수아비’로 몰아세웠다. 안철수를 둘러싼 복잡한 당내 기득권 세력들의 권력구조를 꼬집는 데는 이만큼 딱 떨어지는 비유도 없다.
감옥에 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춘향이인 줄 알았는데 향단이었다’고 비꼬면서도 탈당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나 “선거 때는 지게 작대기라도 필요하다”며 친박 의원들을 깎아내리면서도 끌어안은 것은 집토끼를 붙잡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보수 후보라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맞는 말도 ‘싸가지’가 있어야 보수를 설득할 수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洪 막말, 촌철살인의 품격(?)
홍준표의 말은 상대가 들으면 기가 질리도록 불쾌한 말이지만 지지자들은 박수를 친다. 트럼프처럼 비호감도도 올라가지만 홍준표의 말이 허튼 말도 아니다. 홍준표는 “트럼프 막말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할 정도로 동질성을 느낀다. 트럼프도, 홍준표도 주류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음담패설까지도 서민적이라고 여긴 백인 블루칼라들의 몰표 덕분이었다. 트럼프가 홍준표의 막말을 들으면 “그런 품격 있는 말로는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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