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첫 스탠딩 ‘TV 토론’을 보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0일 19시 02분


유세경 교수(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학부)
유세경 교수(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학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은데, 19일 밤 진행된 ‘대통령 후보자 TV 토론’이 그러하다. 이 TV 토론에서는 ‘토론 시간 총량제’라는 새로운 룰(규칙)을 정해 후보자가 자신에게 할당된 9분을 상대후보자들에게 자유롭게 질문하거나 답변하는데 쓰도록 했다. 그 결과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문재인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되고, 정책별로 후보자간 토론연대가 형성되는 모습도 연출돼 토론이 이전보다 흥미롭게 진행됐다.

TV 토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룰은 후보자간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후보자간 질문의 횟수와 답변 시간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 특정 후보자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토론 룰을 정한다. 토론 룰이 엄격하다보니 정책의 중요성에 관계없이 다양한 주제들이 질문되고 답변으로 이어져 중요한 정책에 대한 후보자들의 생각을 검증하기 힘들었다. 후보자들 역시 제한된 답변시간을 이용해 즉답을 회피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답변해 TV토론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제 진행된 TV토론에서는 후보자들이 자유롭게 질문시간을 쓸 수 있어 한 가지 이슈에 대해 집중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질문의 주도권을 잡은 후보자가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보’ 분야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유승민 후보는 ‘사드배치’와 ‘북한 핵개발 대응’ 등에 대해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 질문을 집중해 ‘국가안보 프레임’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간 설전도 토론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국민연금’ ‘복지정책’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재원 조달방안을 대라는 질문과 답변 공방이 이어지자 홍준표 후보는 “대통령 후보자 토론이 아니라 기재부 국장들 간 토론 같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대북송금’ 문제로 후보자 간 공방이 이어지자 심상정 후보는 “언제까지 대북송금 문제를 물고 늘어질꺼냐”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 모두 이전 TV 토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TV토론에 기대하는 내용과 후보자들의 품격은 시청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정책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토론하길 원하는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특별히 관심 없는 내용을 수치까지 들면서 설명하는 토론회를 지루하다고 느끼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TV 토론을 통해 지지후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많은 시청자들은 TV 토론을 시청하면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생각을 확인하거나 적어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후보들에게 설득당하길 기대하면서 자신의 성향에 따라 TV 토론의 내용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TV 토론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TV 토론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TV 토론을 통해 시청자들이 설득 당해서라기보다는 다양한 미디어의 원천 콘텐츠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TV 토론은 신문과 인터넷 등 다른 미디어에 의해 그 내용이 편집돼 많은 유권자들에게 요약·전달되고,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 역시 후보들의 모습과 말을 편집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달아 SNS를 통해 전달한다. 그래서 후보자들의 TV토론은 1회 방송으로 그치지 않고 생명력을 지속하면서 후보자들을 홍보한다. 이제 후보자들은 TV 토론이 어떻게 생명력을 지속하면서 활용될지 고심하면서 토론에 임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애매한 답변은 1회성 TV 방송으로 사라지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담은 정책내용들은 공감하는 이들에 의해 생명력을 갖게 된다. TV 토론에서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하는 이유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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