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검증 선진국에선 어떻게
호주, 의회예산처가 재정추계 지원… 한국선 ‘비용공개’ 국회 논의 미적
해외 선진국에서는 선거에 따른 공약 비용을 산정해 국민들에게 공표(公表)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선거 공약에 예산과 추진 일정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는 ‘매니페스토’ 개념을 처음 제기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보수당, 노동당 등 주요 정당은 주요 선거 때마다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실행 계획, 방식을 담은 공약집을 발간한다. 최근에 나온 공약집들은 분량이 100쪽이 넘을 만큼 자세하다. 각 정당은 집권할 경우 5년 동안 추진할 주요 정책들의 실행기간과 단계별 목표 등을 명확하게 공개한다. 언론과 외부 싱크탱크들은 이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호주는 의회 안에 있는 독립기관인 의회예산처가 선거 기간과 상관없이 정책비용의 재정추계를 지원한다. 정당이나 의원들이 정책 비용을 산출하고 예산을 분석할 때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면 제공하는 방식이다. 선거 준비 기간을 제외하고는 여당, 야당은 물론이고 무소속 의원도 이용할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다음 선거에서 평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당별 선거공약의 정책비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든다.
네덜란드의 정당들도 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 산하의 중앙계획국(CPB)에 재정 추계를 의뢰할 수 있다.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받기 위해 재정 추계치를 공개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CPB는 정책별로 직접 소요되는 비용은 물론 거시경제나 고용 등에 미치는 중장기 효과까지 평가해준다. 올해 3월 열린 총선을 준비하면서 CPB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이미 경제전망보고서를 발간했고 각 정당은 이를 바탕으로 선거공약을 확정해 가을경 재정추계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후보자별로 총선거비용 제한액만 규정돼 있을 뿐 구체적인 정책공약의예산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기획재정부가 정당별로 복지공약에 필요한 예산을 산정하고 발표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정당들이 선거공약과 추계비용을 함께 발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했다. 건국대 이현출 교수는 “지금처럼 ‘이쪽 예산을 아껴 저쪽에 쓰겠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정보는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선거공보물에 정책 실행 방안과 재정추계 등 구체적 정보를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공약서와 공보물, 10대 공약은 다음 달 9일까지 중앙선관위 정책공약알리미 홈페이지(policy.ne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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