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보수’ 깃발 든지 100일도 안돼… 제 살길 찾아 U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일 03시 00분


[선택 2017/대선 D-6]바른정당 12명 집단 탈당

보수 후보 단일화를 놓고 내홍을 겪던 바른정당이 창당 100일을 앞두고 결국 두 동강이 났다. ‘진짜 보수’를 실현하겠다며 창당에 동참했던 의원 33명 가운데 2일까지 총 13명이 ‘보수 대동단결’을 명분으로 탈당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새로운 보수’를 위한 분당 실험은 사실상 좌초됐다.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국민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홍문표 의원은 “국민들은 친북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가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현 한국당)에서 탈당하면서 ‘친박(친박근혜) 인적 청산’을 강하게 주장했던 장제원 의원은 “보수 지지층에서는 일단 과거(친박계)의 잘잘못에 얽매이지 말고 보수가 분열하지 말라는 요구가 어마어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집단 탈당한 뒤 경쟁 정당으로 몰려간 전례는 없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의원 16명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압력을 넣겠다며 탈당한 적은 있다. 하지만 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1위 후보에게 20%포인트가량 밀리는 현재 상황에서 ‘보수 재집권을 위해 분열해선 안 된다’는 명분은 약하다는 비판이 많다.

결국 바른정당이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가치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모인 ‘이익단체’였을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탈당파 의원은 “바른정당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위한 ‘플랫폼 정당’으로 여긴 게 사실”이라며 “반 전 총장의 중도 하차 이후 급속히 원심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새 보수’를 내걸었지만 바른정당의 토대 자체가 취약했고, 대선 뒤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대선을 불과 1주일 앞둔 중차대한 상황임에도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집단 탈당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원들은 당장 내년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지역 조직의 근간인 기초·광역의원과 단체장이 흔들리면 3년 뒤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장 의원은 “지방의원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지방 조직이 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경우 바른정당이 보수 분열 책임론을 뒤집어쓸 것에 부담을 느껴 한국당에 합류했다는 해석도 있다.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보수 대동단결’을 외쳤지만 한국당에선 친박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서청원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당을 깨고 나가더니 이제 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신들이 추대한 후보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다”면서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의원은 “개인적 정치 후사를 위한 뒷거래에 불과하다”며 “선거 유불리를 떠나 정치도의적으로 절차와 방법이 잘못됐고 보수표 결집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한선교 의원은 “일괄 복당이 이뤄지면 한국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김태흠 의원 등 재선 의원 4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책임을 친박으로 돌리면서 8적이니 10적이니 하고 청문회 과정에서 제일 앞장선 황영철 의원(탈당 보류)이나 탄핵에 앞장섰던 권성동 의원(전 국회 탄핵소추위원장), (대변인 하면서 모질게 친정 정당을 비판했던) 장제원 의원 등 3, 4명 정도는 입당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 후보는 “이제 친박이 없어졌는데 무슨 감정을 갖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지게 작대기도 필요한 때가 대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단 탈당파들은 시·도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바로 홍 후보 지지 유세에 투입될 계획이다. 그러나 복당 절차는 대선 이후에나 이뤄질 예정이라 이들이 자칫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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